전설/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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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덕령과 누이의 재주겨루기
    옛날에 만고충신 김덕령하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을 정도로 힘세고 용맹스러운 장군이었습니다. 키는 별로 안 컸어도 힘이 무지무지 장사였습니다. 거 집집마다 보리쌀도 갈고 콩도 갈고 하는 확독이 있는데 그 확독의 몸뚱이를 듬성듬성 시끼줄로 동여매고는 거기다 고리를 만들어 가지고 고리 속에 말뚝을 끼워넣고는 팔을 올렸다 내렸다하니 그 무거운 확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정도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흔히들 김덕령이만 똑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양반의 누이는 훨씬 더 똑똑하였습니다. 힘도 보통이 아니고 앞날을 내다보고 상황을 판단하는 지혜가 남달랐었습니다.한곳에 두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조금 못한 사람이 치이는 것 아닙니까. 기세에 눌려서 제대로 커나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이래서 덕령의 누이는 재주로 한다치면 자기가 올라서야 허것지만, 여자는 한번 출가외인이 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니까 남자인 자기 동생이 출세를 해야 집안에 영광이 찾아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인자 자기 동생을 높은 사람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누이는 어느 날 저녁 동생을 불러 이러한 제의를 하였습니다.“야! 덕령아 우리 재주시합 한 번 하자꾸나. 이건 그냥 장난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너는 말을 타고 집을 나서서 무등산을 한바퀴 빙 돌아서 오고 나는 그사이에 도포 1벌을 짓겠다. 이 시합에서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죽어주는 거다. 우리 오누이는 재주가 서로 엇비슷하게 뛰어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니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울 기회를 한사람에게 확실히 밀어주기 위해서 시합을 하자는 거지 추호도 별다른 뜻은 없다.”누이의 무거운 목소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덕령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언젠가는 이 날이 올 것으로 짐작했지만, 그 날이 너무도 빨리 온 것에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자기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봤자 누이를 제대로 당해낼 재주가 없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덕령은 ‘이제 조그마한 뜻도 펴지를 못해보고 죽는구나. 누나도 야박하시지. 어린 동생을 꼭 죽게 만들어야만 하나’ 하면서 착잡한 심정에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한번 죽을 목숨 최선을 다해 하는데까지 해보기로 결심하고는 마굿간에서 말을 꺼내어 왔습니다.이 양반은 자기의 용마에게 “용마야! 오늘은 너의 주인인 나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날이다. ‘죽으려고 한다면 살고 살려고 한다면 죽는다’는 전쟁터에서의 구호처럼 너는 죽을 각오로 뛰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누이는 방안에 옷감과 바느질도구를 준비해놓고 동생은 대문 앞에 말을 세워두고 서로 “시작”이라는 구두신호의 외침에 따라 피를 말리는 시합을 벌였습니다. 누이는 애당초 동생에게 져줄 것을 생각하고 벌인 시합이었지만 막상 여기서 지면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그렇게 착잡할 수가 없었습니다. 덕령은 힘껏 채직을 내려치며 말을 달렸고 누이는 누이대로 바삐 옷감을 자로 재고 가위를 움직여 도포를 지어 나갔습니다. 누이는 어찌나 손이 빠르든지 덕령이 집에 도착하려면 십리를 더 와야할 곳에 있을 때 이미 옷을 다 지어놓았습니다.“이대로 있는다 치면 내가 살고 내 동생이 죽을 텐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내가 죽을 수는 없지. 아니야 우리 집 대들보인 덕령이를 살려야 우리 가문이 크게 빛이 날 거야.”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며 안전부절 못하고 있는데, 동구밖 가까이에서 말방울 소리가 울리며 동생이 도착하였습니다. 순간 누이는 눈을 지긋이 감고는 도포에 달린 옷고름을 힘껏 잡아 당겼습니다. 덕령은 사력을 다해 집에 도착하여 마당에 말을 세우고는 황급히 안방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누이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야, 너 참으로 고생했구나. 나는 아직 옷고름을 못 달았는데. 이 시합은 네가 이겼구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는 그 날 저녁 노끈으로 목을 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이 사실을 알게된 덕령은 통곡을 하면서 혹시나 하여 도포자락을 자세히 살펴보니 실밥이 묻어 있었습니다. 이미 옷을 다 지은 후 일부러 옷고름을 뜯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덕령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누이의 숭고하고도 큰 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고 고이 장사를 지내주었습니다.그러고는 누이의 뜻을 받들어 밤낮없이 연마하여 가문과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였습니다. 다 큰 인물이 날라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과 걸리적거리는 것을 피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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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넓은 김삿갓
    우리가 보통 방랑시인 하면 김삿갓을 떠올리죠. 그 양반을 김삿갓 김삿갓 하지만 본래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김병연입니다. 원래는 양반가문이었지만 홍경래난때 조부가 반군에게 항복했다하여 집안이 몰락하였습니다. 김병연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처지에 크게 낙심하여 옷보통이 하나 들러메고 전국을 유랑한 것이었습니다. 넘치는 글재주와 특유의 풍자로 이곳저곳 다니면서 수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쉰밥신세 타령이나 서당풍경을 묘사한 이야기는 왠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깐 쬐끔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옛날에 어느 마을에서 제사지내는 일을 가지고 두 사람이 언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제사때 제사상 앞에 세워두는 지방(紙榜:위패)이 있는데 그 지방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산골마을이라치면 한 마을에서 한문을 제대로 읽고 쓰고 할만한 사람이 잘해야 한 두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계약문서 같은 것은 번번이 그 사람들의 몫이지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을문(乙文=언문(諺文)을 그렇게 부름)이라하여 겨우 한글로 이름자나 쓸 정도였고 그나마도 가정형편이 곤란하고 남의 집살이나 하는 사람들은 기역니은도 모르는 까막눈이 허다했습니다.인자 한문을 아는 집에서는 윗대조상 제사를 모실 때 번 듯이 ‘题考學生府君 神位’니 ‘縣祖考學生府君 神位’니 하는데, 겨우 한글만 아는 집에서는 한문위패를 쓸 수가 없으니깐 제사임자에 맞추어 가령 아버지 제사면 ‘돌아가신 아버님 신위’ 이렇게 제사를 수 년째 지냈었다 합니다. 물론이야 한문 잘 하는 집에 가서 써올 수도 있었겄지만, 제사가 한두번도 아니고 번번히 아쉬운 소리를 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글위패로 제사를 모시는 집에서 어느 해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데, 자정에 시작하여 새로 두 시경에 끝났습니다. 치제후 제주가 소변을 보러 마당으로 나오니 그때꺼정(까지) 한문 잘 한다는 영감이 안자고 책을 읽더랍니다. 그것을 보고는 이 남자가 “예. 영감님! 오늘이 제 부친 기일인데 건너 오셔서 제사음식 좀 드시지요.” 했습니다. 밤이 이슥한 시간이라 배가 출출하여 찾았갔습니다.방으로 들어가니 떡, 과일, 식혜같은 음식을 가져다 주어 같이 먹으면서 얼핏 제상위의 지방틀을 보니 위패가 한글로 ‘돌아가신 아버지 신위’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유교학문에 투철한 영감은 이것을 보고는 ‘원 세상에 제 부모제사를 모시면서 위패를 저렇게 틀리게 쓸 수 있을까? 한문을 모르면 한글이라도 <현고학생부군 신위>라고 글자를 맞게 써야 할 것 아니여’ 생각을 하였습니다.말하자면 당시만 해도 지방은 반드시 한문으로만 써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한글지방은 도저히 있을 수도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영감은 “여보시오. 광식씨. 세상에 이런 위패가 어디있다요. 어느 정도는 격식을 갖춰져야 할 것 아니요. 저승의 고인이 화내지 않을까 걱정되오. 앞으로는 제대로 배워서 잘 좀 쓰시오.” 한마디 하였습니다.이 말을 들은 남자는 가만히 듣고 보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학을 많이 했으면 한거지 자기가 뭐길래 남의 제사에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거든그래서 인자 “영감님,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사의 위패를 꼭 한문으로 써야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저처럼 <돌아가신 아버님 신위> 하면 얼마나 가직한(가까운) 느낌이 듭니까. 제 제사니깐 제 편리한대로 하겠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지요.” 하고 대꾸를 하였습니다.다시 영감은 “이봐. 광식씨. 관혼상제라는 것은 다 법도가 있는 거여. 자기마음대로 바꾸고 안 바꾸고 안 바꾸고 하는 것이 아니여. 내 말 깊이 알아들어.” 훈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두 양반은 타시락거리며 서로 자기주장만 하였고 끝내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였습니다. 결국에는 예도(禮度)에 밝은 학식이 높은 분이 나타나면 그 양반에게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판가름 내주도록 하자고 약조를 하고는 자리를 끝냈습니다.이런 약속을 한지 석 달 쯤 지날 무렵에 김삿갓 어른이 이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마을 사랑방에 동네 어른들을 모아놓고 이런저런 좋은 담화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하는데, 이 양반이 참 아는 것이 많고 문자속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대한히 학문이 많이 든 유식자였습니다. 이래서 지난번 언쟁을 벌인 사람들도 이 양반에게 그 일을 말하여 판가름 받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조용한 곳으로 김삿갓을 불러내어 세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하였습니다.두 사람이 차례로 자기의 입장을 자세히 이야기 하니깐 조용히 경청하더니, 김삿갓은 “제가 들어보니 한문으로 위패를 써야 한다는 분의 의견도 충분한 근거가 있고, 한글로 위패를 써도 된다는 분의 의견도 충분한 근거는 있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일을 놓고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세상이치에 합당한 원칙을 바탕ㅇ로 최종적인 결정은 그 일에 처한 사람이 주관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에 두 양반의 주장은 모두 맞습니다.” 이렇게 판결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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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과유병(藥果由病)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아주 가난하고 착한 아이가 있었는데, 이아이는 산길을 넘고 넘어서 공부를 배우려고 어린 마음에도 비가 내려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주 열심히 공부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밤이 지새도록 그 아이 방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온 고을에 소문이 날 정도로 날마다 들리기에 어느 날인가 나라의 임금님이 정말로 그런 아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캄캄한 밤중에 그 아이가 있는 산골 마을에 가서 그 아이 공부방을 ㄷㄹ려보기로 하고는 갔었습니다.요리 저리 공부방을 둘러보니 그 방에는 많은 책들로 쌓여 있었고 그 책들을 자세히 보니 그 아이가 글을 쓴 책들도 여러 권이 있엇 참으로 기특하게 생각하고는 이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와야 할텐데 마땅이 줄 것이 없자 마침 임금님한테는 약과(藥果)가 있어서 이 약과를 주면서 그 아이에게 내일 병과(丙科) 과거가 있을 것이니 그 시험을 보러 오라고 일러 주었습니다.이 일이 있은 뒤다음날 시험이 시작되어도 그 어린아이 유생은 나타나지 않았고, 임금은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기다려도 끝내 오지 않으니, 며칠 뒤에 그 유생을 불러 과거장에 오지 않은 이유를 물어 본 바 “어제 밤에 임금님이 주신 약과를 먹고는 체하여 시험을 보러오지 못했습니다.” 하였습니다.“어허! 이런 딱한 일이 또 있을까?” 임금이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임금님은 어린아이의 재주가 가상하여 무조건 이번 시험에 통과시켜 주려고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임금께서는 테가 나지 않게 도와주려 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자신이 준 약과를 먹고 체했으니 그 벌전(罰錢)으로 아이에게 오십 냥을 주면서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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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생김새 유래담
    옛날에 옛날에 초새와 메두기, 개미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란데 그들이 모양새가 현재와는 사뭇 다른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든 먹을 것이 풍부하지만 예전에는 먹을 것이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먹을 것이 부족하여 껄덕거렸(먹을 것을 탐내는)습니다. 어느 해 봄날 하루는 이 세 동물들이 양파와 비슷하게 생긴 물구씨(달래나 양파처럼 매운 맛을 가진 ‘무릇’ 뿌리의 사투리)를 들판에 나가서 캐어다가 푹푹 삶아서 먹자고 하였습니다.[조사자 : 그냥 먹어도 될 터인데 왜 삶아 먹는 답니까? 제보자 : 아. 그거요. 먹을라사(먹을라면) 왜 못 먹겠어요. 먹을 수는 있지만 워낙 매운맛이 강해서 혀가 얼얼하기 때문에 그렇지요. 마늘을 냄비에 쪄 먹으면 전혀 맵지 않고, 오히려 포근포근 하니 맛 더 있지 않아요. 그와 같은 이치지요.]이들은 물구씨를 솥에다 쪄놓고 조금 기다렸다 식혀서 먹어야 하는데, 당장에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뜨끈뜨끈 불을 때서 무릇이 익기가 무섭게 솥뚜껑을 열고 먹으려고 하였습니다. 초새가 제일 먼저 꼬챙이를 들고 물구씨를 찍어내어 주둥이에 넣는 순간 어찌나 뜨겁던지 주둥이가 익으면서 늘어나 버려 지금처럼 입이 쫑긋하게 되었고, 이러한 와중에 초새가 소동을 벌이면서 꼬챙이를 휘젓는 바람에 솥 안의 뜨거운 물이 메뚜기의 이마빼기로 튀어 메뚜기의 이마가 확 벗겨졌다고 합니다.부지런한 개미는 불을 때서 삶는 그 시간조차도 기다리는 것이 아까워 낫을 들고 산으로 가서 나무 한 짐을 해서 지고 내려왔습니다. 나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친구를 찾아 가마솥이 잇는 곳으로 가보니 한 친구는 입이 늘어져 있고 한 친구는 이마가 벗겨진 체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쳐다본 개미는 몰골이 하도 우스꽝스러워 ‘하하하 호호호’ 소리를 내며 어찌나 웃어대었든지 좁은 입이 길게 쫙 찢어지고 팔을 짚은 허리는 움푹 들어가서 두동강이 진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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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에가 생겨난 유래
    옛날에 어느 고을에 본남핀(본남편)이 마느래를 얻어가지고 살고 있었는디 어찌 된 일인지 맨날 마느래를 구박하고 때리고 못살게 하였습니다. 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담시 그런 것 보니께 아마도 자기 깜냥에는 뭣이 안맞았든가 안그러면 속궁합이 안맞었든가 했겠지요. 일년이년 티격태격하다가 더 미워졌는가 어쩠는가 각시한테 집을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미런헌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제 저는 쥐뿔도 없으면서 지가 뭐 대단한 사람인디끼 그 착하고 이쁜 마느래를 내 보낼려고 헌것이지요. 마느래 입장에서 보면 나가라고 헌께 못나갈 이유가 없었습니다.잘나지도 못한 주제에 손찌검이나 하고 맨날 구박만 하는데 무슨 놈의 정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특별히 많은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니고 뭐하나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으니까.마느래는 “내가 당신이 나가라면 못나갈 줄 알아요. 사실 나도 그동안 사는 것이 지긋지긋 했어요. 지금 당장 나가면 나는 훨훨 나는 기분일 것이오. 그렇지만 이것 한가지는 분명히 기억하시오. 당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것이오. 모르긴 몰라도 저같은 마누라는 꿈도 못 꿀 것이고 홀애비 신세에 세끼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을 것이오.”하며 그 집을 뛰쳐나왔습니다.그 남자는 몰락한 양반이었는지 어린 남자종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 종과 더불어 남아 있는 밥을 끓여먹으며 한 대여섯달은 그럭저럭 견디며 살았습니다.그러나 사람이 원래 변변치 않은데다 열심히 살아볼려는 의지도 부족하여 있는 것 다 털어 먹고 나니 뭐 묵을(먹을) 것이 없었습니다.그리고(그래서) 각시 말마따나 알거지가 되어가지고 목에 풀칠을 위해 하는 수없이 차대기(자루) 하나를 준비하여 종놈을 대동하고는 이집저집 동냥을 하러 다니게 되었습니다.한편으로는, 집을 쬦겨나간 그 마느래는 어떻게 서방복이 있었는지 남의 집에 기식하며 두어달 가량 이 마을 저 마을 떠도는데, 마침 천석꾼 부잣집에서 부잣집 마나님이 젊은 나이에 죽고 부자영감이 홀아비가 되어 사는 집이 있었습니다. 기식하는 집의 부인이 보니까 아직 젊고 용모도 그리 빠지지 않아 그 영감집의 후처로 들어가면 괜찮겠다 싶어 넌지시 운을 떼었습니다. 처음에는 펄쩍 뛰었으나 계속되는 권유에 다소 기세가 꺾이고 젊은 여인이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동한 부잣집 영감의 끈덕진 공세에 밀려 결국 그 집의 안방마님으로 들어앉게 된 것이지요.그 남자가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 드나들면서 동냥을 얻으러 다니는데. 백호도 넘는 큰 마을에 도착하여 그 동네의 제일 부잣집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인자 양반의 체면은 있어서 종놈과 같이 다니기는 하여도 자기는 차대기나 들고 다닐 따름이지 남의 대문 안에 들어가는 일은 꼭 종놈한테 시켰습니다. 종놈한테 동냥을 얻어오라고 시켜놓고는 대문 밖에서 대문 틈으로 삐끔히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종놈이 큰소리로 “계십니까. 동냥 한 그릇만 적선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외치고 나니, 안방문이 삐그덕 열리면서 어디서 많이 본듯한 사람인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쫓아내었던 마누라가 딱 들어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마누래도 안방에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문밖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틀림없이 전 남편인 거라. 두 사람은 눈길이 마주치면서 말은 건네지 않았어도 서로 상대방의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속으로 ‘저 여편네가 어떻게 잘 풀려서 귀부인이 되었구나.’ 생각하였고, 마느래도 ‘그야 그렇지. 저 인간이 조강지처를 버리더니 쫄딱 망하고 알거지가 되었구만.’ 속구망(속마음)만 먹었습니다.남자는 그래도 한때는 살을 맞대고 살았던 마누라라 너무 반가와 말이라도 한번 건네 보고 자와서(싶어서) 집안으로 불쑥 들어서니까, 마느래는 순간 분하고 미운 생각이 치밀어 올라와 얼른 방문을 닫아버리고는 식모아이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분례(糞禮)야! 저기 밖에 어린애하고 서있는 거지양반 있지. 그 양반에게 광 한 번 뒤져 보아 참깨 있으면 1됫박만 퍼다 주어라.” 시키니 분례는 어안이 벙벙하여 “우리 주인마님 정신이 어떻게 되신 것 아닐까? 그 귀한 참깨를 1되씩이나 갖다 주라니.”하며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표정이었습니다. 당시 동냥은 잘해야 보리쌀 한 접시이고 잘사는 집에서는 쌀 한 접시 주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그럴만도 하였습니다.깨를 주라는 말을 들은 그 남자는 순간 우리 마느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볼라치면 여기서 시간을 끄는 수밖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퍼득 떠올린 꾀가 밑이터진 차두(자루)에 동냥을 받아 깨가 땅바닥 위로 쏟아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후 식모애가 깨 한 되를 바가지에 들고 다가오니 얼른 헌 자루의 주둥이를 벌려서 받자마다 땅바닥에 깨가 주르륵 옴팍 쏟아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남편은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내가 왜 차두를 잘못대어 이 아까운 깨를 쏟아버렸을까. 이거 큰일났네.’하며 ‘한 톨이라도 남김없이 죄다 주워담아야지. 안되지 안되고 말고’ 혼자 뇌까리며 열심히 주저앉아 일삼아서 깨를 한 톨씩 한 톨씩 주워담는 것이었습니다. 종아이 하고 둘이 쪼그리고 앉아서 줍는다고 해도 어디 깨알이 한두 톨이 이것어요. 그 남자는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싸목싸목(쉬엄쉬엄) 줍고 있으니깐 어느덧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한 밤이 다가왔습니다.방문 틈으로 내다보니 한나절 내내 깨를 줍는 꼴이 안되었다 싶어 부인은 옷매무시를 다듬고 덤덤한 마음으로 마당 박으로 나오더니 “여보시오. 나 없어지면 절로 잘 먹고 잘 산다더니 왜 그리 거지가 되었소. 내가 집을 나오면 남의집 식모노릇이나 할 줄 아셨지만, 보다시피 부잣집 안방마님이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소.” 약을 올리듯 자랑을 늘어놓으며 기를 팍팍 죽여놓는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남자는 이제 덜컥 무담시(괜히) 착한 마누라를 내쫓았다는 후회심과 꾀죄죄한 행색에 남의 문전이나 기웃거리며 빌어먹는 자신의 신세가 더없이 처량하게 느껴져 겨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죽을죄를 지었소. 내가 그만 못된 생각을 하여 당신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고 그 죄값으로 내가 이 고통을 당하고 있소. 지금이라도 내 잘못을 용서해 준다면 응어리진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보겠소.”하며 흐느끼다가 마누라와 자신이 처한 입장이 너무도 달라 서로 가까이 할 수 없을 것을 깨닫고는 격한 감정에 그만 까무라쳐 죽고 말았습니다.그 남자의 혼이 염라대왕 앞으로 불려가서 너는 어떻게 죽어서 여기에 왔느냐고 하니깐 이만저만해서 본처를 학대하다 거지가 되었다가 결국 죽는 몸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너무 본처에게 못할 일을 시켰으니 누에로 변하여 항상 가까이 있으면서 못다 준 정을 주면서 살고싶다며 누에로 환생시켜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은 너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불구덩이 던져 넣어서 평생 고통 속에 지내도록 해야함이 옳을 것이나, 네가 한번도 인간적인 정을 너의 본처에 주지 못하였다고 하니 누에로 변하여 그동안 못주었던 정을 듬뿍주면서 가까이 있도록 하라며 그렇게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못된 남편이 변하여 환생한 것이 누에인데, 누에는 평생 여자들의 손에 크면서 다 자라서는 고치가 되어 여자들의 손에의해 배로 짜여져 고운 옷감이 되는 것입니다. 누에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며 여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오랜 옛날 사람으로 있을 때, 부인에게 진 빚을 갚으려고 무지 애를 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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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둘기의 보은(報恩)
    옛날에는 마을어귀나 고개마루를 지나갈라고 하면 통행인 신변의 안위를 지켜주면서 재앙소멸과 행운의 도래를 위해서 돌무데기가 쌓여있는 서낭당 당산에 세 개의 돌맹이를 던지고 지나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돌무데기로 된 서낭당이 아니고 조그맣게 집을 지어 신을 모시기도 하였지만 드물었고 대부분은 돌서낭이었습니다.그런데 옛날에 철수라는 총각이 서낭당곁에다 돌을 네모지게 쌓아 조그마한 돌집을 만들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흡사 개집 크기 정도나 된 듯 싶은데 돌집을 지어놓고는 겨울철에 비두로기(비둘기) 수십 마리를 몰고 와서 그 안에서 옇고(넣고) 곡식 쭉정이나 싸라기 등을 주면서 정성스레 키웠답니다. 비두로기들은 청년의 사육 덕분에 먹을 것 없는 추운 겨울을 별 어려움 없이 넘길 수 있었고 더욱이 피둥피둥 살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엄동설한을 순조롭게 넘긴 비두로기들은 봄이 되자 정든 우리를 떠나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비두로기들은 못내 아쉬운 듯 쉽게 철수의 곁을 벗어나지 못하고 몇 차례 뒤돌아보며 작별의 인사를 하는 듯 하였습니다. 철수도 마치 어린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었지요. 이 후 철수는 읍내에 용무가 있어 일을 보고는 오후 늦게 석양이 질 무렵 오전에 건너갔던 마을 앞 냇가의 징검다리에서 옷을 잘 차려입은 어여쁜 여자가 빨래를 하고 있는 겁니다.하도 고운 용모여서 철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저렇게 예쁜 여자를 한번 새겨(사귀어) 봤으면! 어떻게 말이라도 한번 붙여봤으면!’ 하면서 만감을 떠올리며 점차 접근을 해왔습니다. 가슴이 떨려 두 근 반 세 근 반하면서 철수가 그 여인 앞에 이르자 그 여인이 두 발을 폴짝 뛰어서 재주를 한번 넘더니 백년 묵은 백여시(흰여우)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백여시는 “철수. 네 이놈! 내가 너를 잡아먹으려고 적잖이 장장 10년을 기다려왔다. 그렇게도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야 나타나는구나. 어디 한번 나의 밥이 좀 되어보지 않으련” 외치면서 철수의 몸을 붙들어 잡고 다짜고짜 옷을 벗기려 옷깃을 당겼습니다.어찌나 힘이 센 여우였든지 간에 이런 상태라면 철수는 잠시 후 영락없이 잡혀 먹힐 운명이었습니다. 철수는 죽을 힘을 다하여 여우에게 저항하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쳤습니다. 옷은 다 찢겨서 헤어지고 사람의 심장을 좋아하는 여우는 철수의 가슴팍을 할퀴고 물어뜯어 상처가 상당히 크게 났습니다.그야말로 사람의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려 있는 급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이 때 어디에선가 “뎅- 뎅- 뎅-. 뎅- 뎅- 뎅” 종소리가 힘차게 들려오는 것 아니겄습니까. 참말로 기적같은 소리와도 같았답니다. 여우가 가장 무서워하고 꺼려하는 소리가 바로바로 종소리이기 때문이었지요.좋은 먹이감을 먹으려하는 순간 놓치게 된 여우는 “아이, 재수탱이 없어. 다해놓은 밥에 코 빠뜨리는구먼. 오늘은 종소리 때문에 내가 순순히 물러간다만 철수 너 두고 보자. 너는 언젠가는 내 밥이 되고 말거야. 아이고 분하다 분해.” 하면서 백여시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면서 숲 속으로 가고 말았습니다.정말 죽을 고비를 넘긴 철수는 몸을 추슬러서 징검다리를 건너 서낭당 앞에 다다랐습니다. ‘아! 이런!’ 철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원 시상(세상)에 서낭당 옆의 종대(鐘樓)밑을 쳐다보니 땅 위에 수십 마리의 비두로기들이 대그빡(머리)이 터져서 죽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비두로기들이 지신들을 정성으로 거두어준 주인인 철수의 급박한 사정을 알아차리고 주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팽개치고 희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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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렁이의 복수
    옛날에 아들형제를 둔 집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평소에 집안일을 잘 도우며 근면성실 하여서 혼례를 치르고 분갈할 대 부모님이 이웃 마을 앞에 물길이 좋은 옥답(沃畓) 닷 마지기를 떼어주었다고 합니다. 이 논에는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영물이라 가물 때에 논주인이 바위 위에 올라 오줌을 한번 싸면 즉시 큰물로 변하여 논에 물이 가득 고이게 하는 보물(寶物)이었습니다. 6얼이 되어 모내기를 하기 위해 논갈이를 하여놓고 물을 가두려고 자주 논에 드나들며 아예 가래(楸)를 놔두고 다니는데, 어느 날 오전 논을 둘러보러 갔을 때 그 바위 위의 볕이 잘 드는 쪽에서 어른 팔뚝보다 더 굵은 암수 한 쌍의 구렁이가 구불구불 엉켜서 교합을 하고 있었습니다.그 논주인은 구렁이가 바위의 지킴이(업신)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왠 징그러운 것들이 아침부터 이상한 일을 벌인다냐고 하면서 논귀퉁이에 꽂아둔 삽가지래를 빼어들고 와서는 그것으로 한 마리의 구렁이 머리를 겨누어서 내려찍으니 구렁이 머리가 댕강 잘려졌고 그 머리를 들어다 논 옆 숲속에다 버렸습니다. 또 한 마리를 죽이려고 다시 가보니 그 놈은 바위틈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죽은 놈이 수컷이었다고 합니다.구렁이를 죽인 논주인 아저씨는 의기양양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말동이 어매(엄마)! 내가 오늘 아침 우리 논에서 짝짓기하고 있는 구렁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한 마리를 놓친 것 쏨해(아쉬워) 죽것네.”하며 자랑을 해대니, 마느래(마누라)가 “당신 무슨 지악스런 짓을 했어요. 살아있는 것의 목숨을 빼앗고 더더구나 새끼를 가지려고 하는 동물을 해치다니 너무 지나쳤던 것 같소. 제가 보기에 그들이 아마 바위의 지킴이가 분명허요.”하고 나무랬어. 그래도 남편은 “지킴이는 무슨 놈의 지킴이! 암것도(아무것도) 아니여.”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이 일이 있은 지 한 열흘 쯤 지나 말동이 아버지는 건너편에 잇는 자기 고향마을로 이태 전에 돌아가신 형님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오후 늦게 만큼 쌀 보자기와 술 한 병을 들고 집을 나섰대요. 자기 논배미를 지나 널따란 도랑에 이르니 웬 어여쁜 색시가 빨래를 하는데, 너무 고와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남자는 처자가 있는 몸이라는 것도 제사를 지내러 간다는 사실도 잊고 기어코 색시를 한번 만나보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말동이 아버지는 빨래터에서 좀 떨어진 산언덕의 소나무 밑에 앉아 그 여자가 바로 앞으로 돌을 던져 물을 튕겨댔으나 묵묵히 빨래만 하고 나서는 유유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말동이 아버지는 그 집을 유심히 보아두었다가 날이 저물자 그 집 앞에 찾아가 지나는 과객인데 하룻저녁 유숙하자고 부탁하니 순순히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남자는 방이 없으면 헛간에서라도 자겠다니깐 사랑방이 비어있다며 촛불을 켜주고 요까지 내어주었고 어떻게 해서라도 여자 한번 안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들어온 남자는 목이 마르지 않는 데도 안방에다 대고 “주인아주머니 물 한 그릇 먹고 싶소.” 외치니 그 여자가 물대접을 들고 왔습니다.남자는 마음이 바짝 달아 있어 물그릇은 팽개치고 그 여자의 손목을 덥석 잡으니 “외간남자가 무례하게 남의 아녀자의 손을 잡고 겁탈하려 하시오, 당장 손을 놓으시오.” 하며 소동 끝에 방을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한데서 자는 잠인데다 이상한 예감까지 떠올라 그 남자는 옷을 벗지 않고 두루마기를 입은 채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눈만 감고 누워있으니, 문밖에서 ‘쉐-쉐-쉐- 쉐-쉐-쉐-’ 하는 으스스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몇 파례의 소리가 들린 후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수십 발이 넘는 구렁이가 방 네 귀퉁이를 휘감더니 용의 대가리 보다 큰 입으로 “네 이놈! 네가 우리 서방님을 불귀의 객으로 만든 놈이지. 어디 한번 너도 나에게 고초를 겪으며 죽어봐라.”하며 그 긴 몸뎅이로 남자를 휘어 감기 시작하는데 굉장한 기세였습니다. 웬만한 남자 같으면 구렝이의 기세에 질려서 그대로 잡혀 죽었을 것일진대 이 남자도 보통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니가 죽냐 내가 사냐 사생결판을 했응께 말입니다. 독이 오른 구렝이와 건장한 남자가 죽을 힘을 다해 싸움을 벌이는데, 아무래도 사람의 힘이 딸리는 거였습니다.이 순간 대비하려고 그랬는지도 몰라도 남자는 한복 윗도리 속주머니에 날이 퍼렇게 선 비상용의 칼인 비수(匕首)를 꽂아 가지고 다녔는데, 구렝이가 온몸을 휘어감고 올라와 조금만 지체하면 온몸이 꽁꽁 감겨버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그 남자는 신속히 비수를 꺼내어 입을 벌린 구렝이의 목구멍을 단번에 내려 찔렀습니다. 급소를 맞은 구렝이는 온몸이 파르르 떨며 힘이 빠지는 듯 하였으나 웬수같은 저 남자를 살려둔 채 죽어갈 수 없다는 오기로 구렝이는 목구멍 아픈 것도 꾹 참고 목구멍을 찌르기 위해 자신의 입안으로 집어넣은 남자의 팔목을 이빨로 덥석 물고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목구멍에 찔린 구렝이와 팔뚝을 물린 남자는 과다한 출혈과 뱀독으로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한편, 말동이 집에서는 큰집에 제사지내러 간다는 양반이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온 식구들이 말동이 아버지를 찾아나섰습니다. 말동이는 아버지가 지나간 길을 따라 추적해보기로 하고 길을 나서 자기 집 논 근처에 이르러 바위를 쳐다보니 갓이 올려져 있길래 가보았습니다. 몸서리쳐지게도 바위 위에 아버지와 구렝이가 사투를 벌이다 죽어있어서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알리고는 마을에서 인부 3명을 데려다 부친의 시신을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어메는 아들에게 죽은 구렝이도 우리논의 업신(業神)이니 잘 수습하여 산에다 곱게 묻어주도록 하였습니다.사흘 후 남편의 장례를 극진히 치르고 나서 안주인은 그 날 저녁 곤하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소복을 한 예쁜 각시가 나타나서는 “남편과 저의 장례를 치르느라 고생하셨어요. 내가 당신 가문의 3족을 멸하려고 독한 마음을 품었으나 당신이 워낙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당신 때문에 남편 하나만으로 끝내고 나머지 식구들은 살려주는 겁니다.” 하며 “한 가지 부탁은 내가 죽은 날이 되면 꼭 잊지 말고 여느 사람들처럼 나물에 밥 한 그릇을 차려주어 젯밥을 얻어먹는 것이오. 그래야 당신 집안이 대대로 평온하며 복을 받습니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꿈속의 각시는 죽은 암쿠렁이의 화신이었는데, 그 각시의 말대로 한 날 한 시에 죽은 남편과 구렁이제사를 꼬박꼬박 지내주니 자손이 벌죽하고(번성하고) 가문이 날로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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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를 따돌린 남자
    아주 오랜 옛날에 어느 산골에 오누이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 주변에는 호랑이가 우글거리며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들은 틈만 나면 마을 사람들 물어가고는 하였지요. 그런데 이 호환이 이들 오누이에게까지 미칠 줄이야. 인근의 깊은 산에서 사는 한 수컷호랑이는 여지껏 짝을 삼을 암컷 호랑이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허사여서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사람이 사는 민가에서 참한 처녀를 데려다가 짝으로 삼는 것이었는데, 그 호랑이의 배필감이 바로 오누이의 누나였던 것이었습니다. 호랑이는 다치지 않게 그 처자를 조심스럽게 입에 물고는 쏜살같이 자기 집을 향하여 내달아서 도착한 곳이 바로 유명한 인왕산의 호랑이 굴이었습니다. 공포에 질려 반쯤 넋이 나간 처자를 굴 안에 내려놓고는 “이보시오? 젊은 규수! 나는 이곳에 사는 호랑이지만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오. 나도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호랑이요. 규수로서는 조금 안된 일이지마는 내가 20여세에 이르도록 아직 천생배필을 구하지 못하여 몽달귀신으로 죽는 것만은 면해야 되겠기에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데리고 오게 된 것이오. 하필이면 당신이 걸려들어 안되기는 하였지만 어쩌겠소. 모든 세상사가 운명이려니 하고 두렵고 내키지 않는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하면서 처자를 다독거렸습니다.처자는 호랑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앞이 캄캄하고 중치(가슴)이 막혔으나 체념상태로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저로서 어쩔 도리는 없으니다만, 한 가지 부탁을 내건 것이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저를 해치지 않겠다는 것과 항상 저만을 위해 살아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확답만 해주시면 저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라고 들릴 듯 말 듯 한 가는 목소리로 답하였습니다.이렇게 호랑이와 살림을 차린 누나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둘 사이에 남아인 범용이와 여아인 범례라는 아들과 딸을 낳고 살게 된 것입니다.한편, 졸지에 누나를 잃어버린 남동생은 이런 고약한 호랑이가 하나밖에 없는 누이를 들쳐 업고 가버린데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이제나저제나 호랑이를 혼내주고 자기 누나를 구해올 생각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는 호랑이굴에 쳐들어가 호랑이를 맞딱뜨리면 어떻게 물리칠까 아니면 감쪽같은 술수를 써서 따돌려버릴까 하는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하면서 누이 구출작전을 세워나갔습니다. 드디어 5년여 걸친 치밀한 작전 계획에 의해 남동생은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굴을 향하여 집을 나섰습니다.깊은 산골로 들어가 산길의 호랑이 발자국을 추적하여 몇 군데 굴을 뒤져보니, 다른 호랑이가 살고 있거나 호랑이가 지금은 살지 않는 굴이 있었고 드디어 자기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굴을 찾아내었습니다. 굴 앞에서 누나를 불러대니 누나는 너무 반가워서 맨발로 뛰어나와 동생을 얼싸안고 한동안 오누이의 깊은 정을 나누었습니다. 남동생이 도착한 때에는 마침 수컷호랑이가 사냥을 위해 굴 밖으로 출타 중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돌아올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자 누나는 “얘야! 조금 있으면 너희 매형(호랑이)이 돌아 올 시간이다. 너희 매형은 성질이 고약하여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있으면 그냥 두지 않는단다. 어서 장롱 속에 들어가 꼭 꼭 숨어 있어라.”하며 남동생을 황급히 숨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수컷 호랑이는 코를 킁킁대면서 “어 이거 무슨 냄새야? 인내(사람냄새)나네. 분명히 인내야.” 하면서 이상한 느낌을 알아챈 것이었습니다.그러나 그 누나는 “인내는 무슨 인내다요? 내가 사람 아니요. 제한테서 나는 냄새겠지요.” 하며 말문을 막고 말꼬리를 다른 곳으로 전환시켰습니다.그리고는 호랑이 남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갑자기 “아이고 배야! 무슨 배가 이렇게 아프다냐.”며 신음소리를 내자, 호랑이 남편이 걱정을 하면서 혹시 어제 저녁 먹은 고기 때문에 배탈난 것이 아니냐면서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고나면 괜찮아질지 모른다면서 화장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누나는 거짓으로 용변을 보는체하고 한참 후 나오면서 볼 일을 보고 나니 괜찮아졌다고 하였습니다.호랑이는 배탈 기운으로 얼굴이 헬쓱해진 마누라를 위해 뭔가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여보? 내가 얼른 나가서 토끼 한 마리 잡아다가 고아줄까.” 물으니, 부인은 “다 나았는데 뭘 그렇게까지 신경 쓸 것 있어요. 당신이 나를 위해 정 그렇게 해주고 싶으시면 잡아오세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호랑이는 숲으로 나가 순식간에 통통한 토끼 한 마리를 잡아다 솥에다 넣고 불을 지펴 삶고 있었습니다. 치밀한 탈출계획을 세운 남동생은 이 호랑이굴에 당도했을 때 이미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호랑이굴 입구를 막을 만한 바위를 인근 산비탈에서 굴려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굴 옆에 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장롱 안에 숨어 있다가 누나와 매형이 배가 아프다며 소동을 벌이는 순간을 틈타 순식간에 빠져나와 굴입구를 어른한사람 빠져나올 틈만 남겨놓고 막아버렸습니다.미리 동생은 누나에게 내가 어느 순간 감쪽같이 이 소굴을 빠져나오면 바로 뒤따라서 나오도록 일러놓아 두었습니다. 이때 누나는 굴 입구가 왜 어둑해지냐며 살펴보는 체하다가 막아둔 바위틈으로 순식간에 빠져나와 저만큼 앞서가는 동생 있는 곳을 향하여 죽을힘을 다해 내달렸습니다.한참 후에야 마누라가 사라진 것을 알게된 호랑이는 아차 마누라가 굴을 탈출하였음을 직감하고는 큰일이 났다 싶어 밖으로 나오려 하니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 쉽게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호랑이는 죽을 힘을 다하여 바위를 밀었으나 약간 흔들거릴 뿐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도망가는 마누라를 잡아오려면 한시가 급한 지경인데 답답한 노릇이었지요. 호랑이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떠올리고는 호랑이는 바위 전체를 떠밀 것이 아니라 귀퉁이 부분에 힘을 살짝만 밀어 몸만 빠져나갈 공간만 만들어서 겨우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와서 보니 오누이가 손을 잡고 저기 산 밑의 강가의 배 옆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호랑이는 큰소리로 “여보! 범례네(범례 엄마) 지금 어디를 가오. 얼른 돌아오지 않으면 나와 당신의 사랑스러운 딸은 살 수가 없소.” 하며 외쳤습니다.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호랑이는 새끼 범례를 두 손으로 잡고 쫙쫙 찢어서 죽여버렸습니다.다시 “여보! 범용이네. 당신 아들 죽는 꼴 볼 것이야. 속히 돌아오시오.” 외쳤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범용이 마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남동생의 노력으로 누이 자신은 살아날 수 있었으나, 비록 동물과의 사이에 난 자식이지만 자신의 소중한 피붙이를 잃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었습니다. 호랑이는 자신에게 은혜를 입힌 자에게는 어김없이 보은을 하지만, 자신을 해치거나 거역한 자에게는 가차없는 징벌을 내리는 영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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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기아저씨의 악몽
    옛날에 조금 우둔한 메기아저씨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아무래도 혼자의 힘으로는 그 꿈의 의미를 해독해 낼 수가 없어서 다방면으로 학식이 풍부한 붕어아저씨를 찾아가 꿈 해몽을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붕어아저씨가 메기아저씨에게 꿈을 꾼 내용이 어떻드냐고 물어보니까 “머리 위에 무슨 서리같은 것이 보이고 으리으리한 용상에 비스듬히 앉아있는데, 누군가 막대기로 온몸을 꾹꾹 찔러대는 꿈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붕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참 어려운 꿈이라 쉽사리 해독하기 힘든 꿈이라며 아무튼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꿈임에 틀림없다고 하면서 상당히 조심성 있는 처신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메가아저씨는 붕어아저씨 집을 찾아가느라 아침밥도 거른 상태에서 붕어아저씨 집을 나서려니 배가 너무 고파 움직일 기력조차 없을 정도여서 겨우 몸을 추슬러 어슬렁거리며 나오려는데, 바로 눈앞에 한끼 식사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큼지막한 먹이(떡밥)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겁니다. 배고픔에 지쳐있는 메기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먹이를 덥석 물었습니다.“아뿔사! 이게 왠 가시란 말인가?” 먹이 속에는 날카로운 낚시 바늘이 감춰져있어 먹이를 무는 순간 날카로운 바늘에 입주둥이가 덜컥 꿰어 버렸습니다.‘먹고 죽은 귀신은 얼굴색도 곱다.’는 옛말만 믿고 나중에야 어찌되든간에 우선 허기부터 면하는 눈앞가림이나 하고 보자는 경거망동의 결과였습니다. 메기의 꿈에 보였던 하얀 서리는 소금‘이었고 용상에 누워있는 것은 식탁의 접시에 올려진 것을 말하며 막대기로 온몸을 찌르는 것은 생선구이를 젓가락질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사려깊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처신하였다며 화를 입지 않을 일을 지혜롭지 못하게 처신하여 목숨을 잃은 말하자면 경거망동으로 신상(身上)에 큰 화를 당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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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렁이와 신랑신부의 대결
    옛날에 광산군 어떤 고을에 가난한 젊은 내외간(부부)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 알다시피 옛날에는 에지간한(어지간한) 사람들은 뭐가 찢어지게 가난하여 잘해야 일년에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몇 차례 먹는 것이 고작이고 더욱이 쇠고기는 한 번이나 먹기 아니면 아예 한 번도 못 먹고 넘어가기 일쑤였제.이 집의 마느래가 인자 애기가 서니까,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었든 모양이에요. 고기가 그렇게 먹고싶은 상태에서 밭일을 하려고 호미를 들고 밭에를 갔든 갑디다. 밭어귀에 도착하니 어린애 다리통만치나 굵은 구렁이란 놈이 꿩의 몸뚱이를 또아리처럼 둘둘 감아서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는 거여요. 이것을 보고는 그 부인은 자신이 임신중이라 살생하는 것은 절대금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서 우선 당장 고기 한 점이나 먹어 볼 요량으로 큰돌덩이를 집어들어 그 구렁이를 때려서 쫓아버리고 그 꿩을 뺏어다 삶아 먹었습니다. 고기를 먹고 아무런 탈 없이 열 달이 지나 건강한 아들을 낳았답니다.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드디어 나이가 스물이 되니 장가를 갈 나이가 되어 인근마을로 가마를 타고 장가를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행로의 절반쯤 지나가니 대로 가운데에 큼지막한 구렁이 한 마리가 쭉 뻗대고 있으면서 서(혀)를 널름널름 험시로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이었어.신랑이 가마에서 내려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구렁이는 "으흠! 너를 잡아먹어야겠다"는 것이었어. 신랑은 지금 장가를 가는 길이니 혼례는 치러야 할 것이 아니것냐며 꼭 잡아먹어야 한다면 '내일 아맘때 다시 이 길로 갈 테니 잡아먹어도 그때 잡아먹으시오' 하며 혼례를 핑계로 일단 위기를 모면하였어. 그러자 구렁이는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고 신부집에 무사히 도착하여 예를 지낼 수 있었지. 그렇지만 즐거운 혼례를 치렀어도 신랑은 낯빛이 어두워지며 안절부적을 못하는 것이야.신랑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잠을 못 자고 끙끙대고 있자 신부가 걱정이 되어 물으니 신랑은 "나는 내일이면 죽소, 오늘 장가오는 길에 만난 큰 구렁이가 내일 다시 그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잡아먹겠다는 것 아니것소. 그러니 기가막혀 잠인들 오겠소" 하는 거야.신부는 "서방님이 그런 고민이 있으셨어요.저는그것도 모르고---. 하지만 서방님 너무 걱정마셔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쟎아요. 만에 하나 죽을 위험에 처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하면 분명 살아나실 방도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고 위로했어. 신부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신랑은 겨우 눈을 붙이게 되었고, 두 사람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앞두고 새벽 일찍 일어났지. 신랑은 이부자리를 개키는 등의 방안정리를 하고 신부는 이제 마지막으로 친정부모들께 아침진지를 해 올리기 위해 부엌으로 나가 밥을 하여 친정부모와 신랑신부가 모여서 아침밥을 먹었어.두 사람은 친정부모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위험을 전혀 입밖에 꺼내지 않고 비장한 각오로 신행(新行)길에 올랐어요. 신랑신부가 각각 나란히 가마를 타고 오는데 어제 신랑이 구렁이를 만났던 자리에 대처나(역시나) 큰 구렁이가 버티고 서있는 것이라. 이를 본 각시는 두 개의 가마를 땅에 내리게 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구렁이에게로 다가가 " 이 고약한 구렁아! 왜 무고한 우리 신랑을 꼭 잡아가려 하느냐? 차라리 나를 잡아가거라. 만일 우리 신랑을 잡아가려면 나 혼자서 생전(평생)살아갈 수 있는 보화(寶貨)덩이를 주라" 며 소리 소리를 질렀어. 구렁이는 자기 원수가 된 여인의 아들이어서 잡아먹으려 했지만 막사 ㅇ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처자식이 딸린 사람을 무참히 해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여. 그래서 구렁이는 큰 맘을 먹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화덩이 물건을 그 신부에게 주리고 작정하였어.그 물건이 뭐였냐면 도깨비 방망이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요새 애들이 하는 게 임기의 조종판 비슷한 것이었는 모냥(모양)인데, 긴 네모판 위에 꼭지가 네 개 달려있는 형태였다 이 말이요. 구렁이는 신부에게 보화덩이 물건을 이것은 밥이 나오도록 하는 꼭지, 가운데 꼭지는 옷, 저쪽에 것은 돈이 나오는 꼭지라고 설명해 주었어. 그리고 위쪽에 있는 꼭지는 참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며 한참 망설이며 뜸을 들이다가 이것은 말이오 미운 사람이 있을 때 ' 너 죽어라' 하고 누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죽게 되는 것이오 하고 일러주는 거야. 구렁이는 설명을 하고 신부에게 보화덩이를 넘겨주면서 '이제는 네 신랑을 잡아먹어야겠구나' 입맛을 다시며 신랑에게 다가서는 것이었어요. 구렁이의 입이 신랑의 옷깃에 닿는 순간 그 신부는 보화덩이가 우그러들 정도로 힘껏 미운 사람 죽이는 꼭지를 눌러 구렁이를 죽게 하고 말았다 이것이여요.이렇게 하여 이들 부부는 그야말로 어렵디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거기에다가 보화덩어리까지 얻어 가지고 가서 남줄겁이지(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이것만 믿고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는 돈문제로 서로 다투기까지 하였어요. 부부가 보화덩이를 소중이 간직하지 않던 어느 날 이 집에서 키우는 개가 뭣인 줄도 모르고 그것을 입에다 물고 돌아다니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려버렸답니다. 보화덩이를 믿고 게으름만 피운데다 그동안 돈 아까운 줄도 모르고 펑펑 써대다가 몇조금(얼마) 못 가서 이들의 살림은 거덜이 났고 서로 후회를 하며 앞으로는 착실하고 노력을 하며 살기로 서로 다짐을 하였습니다.그로부터 이년이 지난 후 집 앞앞 강가에서 낚시꾼이 고기를 잡아 올린 것을 마침 그곳을 지나던 이 집의 개가 잽싸게 나꿔채어서 집으로 물고 들어오더랍니다. 한때는 부자로 살았었지만 가난한 기운이 찍찍 흐르게 살던 이들 부부는 개가 물어온 물고기를 잡아서 끓여먹으려고 배를 갈라보니, 놀랍게도 뱃속에 그 보화덩이가 들어있지 않겄어요?부부는 다시 부자가 될 수 있었으나 그전처럼 게으름도 치우지 않고 이웃의 못사는 사람들도 도와가며 오래도록 잘 살았답니다. 아마 중간에 보화덩어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도 사람이 그것의 힘만 믿고 나태해지고 자기들의 한없는 욕심만 챙길라고 허니께 일어난 조화가 아닌가 생각돼. 뜻밖의 행운도 그것을 옳게 이용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써야 오래 유지되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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