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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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걱정이 없는 사람
    어느 고을에 한달수(韓達洙)라 하는 고래(古來)로부터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이 살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 있었는데 주변 뭇사람들의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도 그 소문이 자자하여 마침내 궁궐에 계신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자 천하의 지배자인 임금자신도 국사일을 보자면 허구헌 날 머리가 아프고 몇날며칠 잠을 설칠 때가 많은데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화상(사람)이길래 그렇게 살 수 있나 싶어 궁궐로 그 사람을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임금의 부름을 받은 달수는 임금의 부름이지만 하나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느글느글한(느긋한) 마음으로 터벅 터벅 걸어서 닷새만에 궁궐에 도착하였습니다. 임금님을 만난 자리에서 국왕이 “너는 대체 무슨 조화로 한 가지의 걱정도 없이 살수 있느냐”고 물으니 달수는 “예!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는 세상만물에 대하여 조그마한 욕심도 없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자연히 근심걱정이 저에게서 사라졌습니다. ”라고 짧게 답하였습니다. 국왕은 과연 너다운 훌륭한 답변 이라며 칭찬한 뒤 세상의 이치란 두꺼운 책 속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소박한 민초들의 생각에서도 잘 드러난다며 달수의 답변에 흡족해 한 국왕은 주과(酒果)를 대접하고 나서 궁궐을 나설 때 보화덩이(금덩어리)를 하사하였습니다.달수는 임금이 주신 보물을 소중히 간직하여 자기가 사는 고을 앞까지 무사히 도착 하였는데 마을 앞을 흐르는 강변으로 난 도로를 지나다가 주먹만한 그 보물보따리를 그만 강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평생 걱정이 없다던 ‘천하의 무사태평 한 달수에게 처음으로 걱정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아까운 금덩이를 잃어 상심이 크던 달수는 몸보신을 할 요량으로 며칠 후 고을의 닷새장날 잉어를 한 마리 사다가 고아먹기 위해 잉어의 배를 가르는데 뭉툭한 것이 나오길래 잘 살펴보니 나흘전 자기가 잃었던 황금덩이였습니다. 닷새도 안되어 걱정거리가 사라져버렸고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걱정이 없는 사람은 다르다니까’, ‘원래 걱정이 없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준다니까’, ‘걱정을 안 하니까 복이 따르는 것이여' 등등 다들 한마디씩 아끼지 않았습니다. 걱정은 많이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해서 없어져버리는 것도 아닌데, 다만 정도에 지나친 걱정이나 쓸데없는 걱정은 좋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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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을 타고난 영감
      아주 오랜 옛날에 자식이 하나도 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렇게 노부부만 사는 집이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꽁생원인데 세상물정도 잘 모르고 그렇다고 자기의 생업에 열중하는 것도 아니였습니다. 오로지 하는 것은 밤낮으로 책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멈이 마당에다 덕석을 펴고 곡식을 말리려고 널어놓고 장독대의 간장 항아리까지 열어놓고는 들판에 일을 허러 나갔는데 그 날 점심때 무렵 갑자기 하늘 이 시컴해지면서 한 무더기의 소나기가 몰려와 곡식과 장 항아리를 옴막(온통) 비를 다 맞혀버린 거였습니다. 아무래도 못 미덥고 시원치 않아 할머니가 돌아와 보니까 이 모양이니 할머니는 “원 세상에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요. 비가 오면 곡식을 채서 모으고 장독도 덮어야 할 것 아니요. 날이면 날마다 책만 보고 있으면 쌀이 나오요 돈이 나온다요. 손끝하 나 꼼지락 헐라고 생각조차도 않으니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요” 몹시 화를 내며, 바락바락 악을 냈습니다. 영감은 그래도 이렇다 저렇다 대꾸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조사자: 우리 전라도말로 무랑태수(武郞太守)였구만요. 제보자: 말하자면 어느 집 개가 짓는다냐. 날잡아 잡숫시오 하는 것이제. 더군다나 이 일은 지금까지 격꺼온(겪어온) 수 백가지 일중의 하나일 뿐이여. 그렇다면 이 할멈이 얼매나 속을 썩히고 살아 온 것을 알 만 하것지요.] 그러고 저러고 책만 보아 오던 영감은 이 일이 있고도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음. 이제 때가 됐어” 하며 혼잣말로 어떤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다음날 일찍 영감은 할멈에게 “나 오늘 긴히 어데 좀 다녀올 데가 있는데 며칠 걸릴텐게(테니까) 마음을 차분히 하고 지달치(기다리지) 말고 있으오”하고는 집을 나서는 겁니다. 할멈은 늘고(항상) 집에만 붙어있던 양반이 느닷없이 길을 떠난다니까 황당하였지만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으로 생각하고 조심히 댕겨오시라고 배웅하였습니다. 남자는 여태까지 사주쟁이·점쟁이가 되기 위하여 주역과 각종 점성술에 대한 책을 혼자 나름대로 공부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심오한 원리에 접근하지는 못하고 맨날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기사 경오 신미...........’이어지는 육십갑자만 외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있었지요. 영감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 길을 떠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뚜렷한 행선지도 없었고 단지 어설프게 익힌 점을 치는 솜씨를 실제 사람들에게 적용해보고 싶은 작은 욕심밖에는 없었습니다. 영감은 신작로 길을 따라 하염없이 가는데 마침 큼지막한 어느 동네에 도착하였습니다.영감은 갑자기 많이 걸은 탓에 다리가 피곤하여 동네 부잣집 골목에 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는데, 부잣집 행랑채의 지붕위에서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니까 “몽개몽개 나는 구나” 하며 조금 큰소리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마침 그 전날 저녁에 이 부잣집에 도둑이 들어 엽전 궤짝을 몽땅 잃어버렸습니다. 부자영감은 괘씸하기 그지없는 도둑을 어떻게 잡아낼 수 있을까 아침부터 고민고민 하던 차에 어디에선가 “몽개로구나 몽개로구나” [실은 ‘김이 몽개몽개 나는 구나'라는 말을 잘못들은 것임.]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습니다.'몽개'라 하면 이웃마을에 사는 뚝심 세고 막되어 먹은 젊은 놈이 아닌가. 이놈이 간밤에 몰래 산을 넘어 와서 우리 집 보화를 훔쳐갔다고, 네 이놈을 잡아 가만두지 않으리라. 영감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 내가 도둑을 맞아 상심을 하고 있는 줄을 알고 내 고민을 해결해 준다냐고 반가워하며 골목 밖으로 나와보았습니다. 왠 허름한 영감 한 사람이 길옆에 앉아 있는데 점괘를 알아맞히는 능력이 보통이 아닌거라. 부자는 그 영감을 집으로 불러들여 밥에다 고기며 술이며 걸판지게 차려서 대접을 성대하게 하고는 집을 떠날 때는 그 귀하디 귀한 쌀(白米)까지 한 말 어깨에 들려 보내주었습니다.영감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무심코 한마디 해 본 소리가 이렇게 큰 복을 가져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고 자기도 쬐끔은 신통력이 있지 않을까 우쭐대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지같은 영감이 자기를 도둑으로 지목한 사실을 쫙 퍼진 소문으로 알아차린 ‘뭉개’라는 청년은 '이런 고약한 영감 같으니라구. 늙은 영감이 나를 능멸해' 하며 그 영감이 지나갈 산고개의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한참 기다리니 오후 늦게야 영감이 쌀자루를 어깨에 들쳐메고 낑낑대며 올라오고 있는 거야. 몽개는 이 영감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이것 보시오! 영감님, 나하고 내기를 하여 이기면 그대로 쌀을 가져가시고 지면 쌀을 빼앗기는 겁니다.’ 큼지막한 양손 안에 두꺼비 한 마리씩을 보이지 않게 쥐고 있던 몽개는 영감에게 자기 손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워낙 큰손아귀라 그 속에 무엇이든지를 사실 모르고 있던 영감은 “내가 당신 손 안에 든 것을 알고는 있으나 내가 맞춰버리면 분명 당신이 그 안에든 것을 내팽개쳐버릴 것 같아 차마 말을 못하겠소. 살아있는 것이라면 목숨을 잃을 것이 확실하오.” 하며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몽개는 잘못한 사람에게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그 영감의 넓은 도량과 ‘이것 아니면 저것하는 식’의 생각이 얼마나 단순하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고는 영감에게 백배사죄를 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의적(義賊)으로 부잣집의 재물을 뺏어다가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도적질이 나쁘다는 것은 알았지만 부자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이 적기 때문에 부득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금일부터는 손을 털고 열심히 땀 흘리며 노력하여 살겠습니다.” 하며 몽개는 도둑생활을 청산하고 부지런한 농사꾼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영감은 방안퉁수 신세의 샌님에서 한 사람의 큰 도둑을 새사람으로 교화시키고 귀한 쌀까지 얻어왔으며 이제 제법 능통한 점쟁이가 되어 왠만한 점과 사주를 보는 점술가로 변신하였고, 이후로는 할머니의 속을 썩히지 않는 훌륭한 가장으로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백성들 사이에는 ‘도둑도 넉넉한 집의 것을 가져다 먹으면 죄가 안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있었는데, 이는 서민들의 생활이 너무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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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행으로 생긴 발복(發福)
    옛날에 어떤 마을에 남편도 없이 어여쁜 딸 하나만 데리고 사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손바닥만 한 땅돼기를 부쳐 먹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항시 먹을 것이 부족하였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기 위해 부잣집에 방아품을 팔러 다녔습니다. 일을 해주고 나면 그 집에서 품삯으로 돈 대신 싸래기(금이 간 쌀 : 싸라기 의 사투리)를 받아오곤 하였으며 이 싸래기로 밥을 해먹고 일부는 모아 두었다가 인근에 있는 절의 스님이 시주를 오면 시줏쌀로 주어왔습니다. 어느 해 봄날에도 인근 절의 대사가 시주를 받기 위해 들렀습니다. 스님들의 시주 포대는 대개 바랑 속에 서너 개 있기 마련인데 즉 쌀, 보리쌀, 찧지 않은 날보리 등을 구분하여 받습니다. 여느 집에서나 웬만큼 힘들어도 온전한 쌀을 주는 것이 보통이나 마침 이 집에 들렀을 때는 싸래기를 주기 때문에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포대를 댔는데 밑구멍에 뚫려있어 싸래기를 붓자마자 마당바닥에 쏟아져버렸습니다. 스님은 비록 싸래기일지라도 귀한 곡식이라며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 내내 바닥에 쏟아진 싸래기를 흙이 묻지 않게 일일이 주웠다 이겁니다. 스님이 싸래기를 다 줍고 나니 날이 어둑어둑하여 절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스님은 “날이 너무 저물어서 그러는데 하루저녁 유숙하고 가면 어떨까요.” 하며 하룻밤 머물 기를 청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스님의 청을 어찌 따르지 못하겠소이까? 다만 방이 단방(1개)이고 집이 워낙 누추하여 스님께서 불편해 하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 염려될 따름입니다.” 하였습니다.   유숙을 승낙 받은 스님은 집안으로 들어서더니 안방의 윗목에 꿇어앉아 “하루아침에 선공덕(善功德) 하니/ 일시에 무주공(無柱空)하여/오시(時)에 꽃이 피어/ 그 꽃나무 왕나무 재목(材木)이 로다/말년에 왕재목이 되었도다...” 운운하며 염불을 하는 겁니다.[염불의 뜻은 어느 날 아침 좋은 공덕을 쌓으니/ 갑자기 대나무가 자라나서/ | 낮에 꽃이 피었는데 그 대나무 궁궐의 재목감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왕재목(왕비)가 될 것이다는 내용]   염불 말마따나 그 해 오월이 되니 이 여인의 집 부엌에 커다란 왕대 죽순이 솟아 올라오는데, 순간순간 자라는 것이 한나절 만에 지붕을 뚫고 하늘높이 뻗어 올라갔습니다. 점심때 무렵이 되니 그 나뭇가지 전체에 화려한 꽃이 피더니 얼마 안 되어 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 어떤 상서로운 징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 그 꽃잎을 비단주머니에 담아 안방의 벽장 속에 걸어두었답니다. 한편 불공을 많이 드린 한 여인 집에 엄청나게 큰 왕대가 솟았다는 소문이 온 고을에 퍼지자, 이 고을에 사는 최부자라는 사람이 거기에는 필시 무슨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다. 분명코 복(福)을 가져다주는 복나무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하면서 이 대나무를 2천 석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사가지고 갔습니다. 이렇게 대나무를 사간 이후 최부자는 더욱 재산이 불어나 대나무의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이듬해 봄이 되었을 때 온 나라의 방방곡곡에는 커다란 방(榜)이 나붙었는데 그 내용은 “지금 나라의 임금님께서 중대한 병환을 앓고 계신데 어떠한 약을 써도 전혀 차도(差度)가 없다. 만일 이러한 임금의 병환을 낫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에서 큰상을 내리겠다. 특히, 들리는 말에 의하면 천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왕대나무의 꽃잎을 먹으면 어떠한 병도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왕대나무 꽃잎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꼭 연락을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이 여인의 딸은 예쁘게 자라나서 방년 열아홉의 고운 자태를 드러내게 되었고 모녀는 드디어 우리 집에도 뭔가 큰 영광이 찾아오는 전기가 마련되었다며 크게 고무 된 마음으로 ‘왕대나무 꽃잎이 든 주머니를 보자기에 곱게 싸들고 한양의 대궐로 향하였습니다. 닷새 남짓 걸어서 한양의 궁궐에 당도한 모녀는 이러저러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궁궐관리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이들은 '이제야 우리 상감마마께서 회생하시게 되었구나'하고 기뻐하며 내전에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임금은 불편한 몸이었지만 기쁜 소식에 새로운 힘이 용솟음치면서 친히 이들 모녀를 궁궐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반갑게 맞이하면서 고마움을 표하고 어떤 상을 내렸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여인은 '황송합니다마는 저에게 보시다시피 과년 한 여식이 하나 있는데, 하루 속히 좋은 배필을 만나 가정을 차렸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소원입니다.'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임금은 “부모 입장에서야 두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이 가장 큰 소망이겠지요.”라며 '어디 처자의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하였습니다. 여태껏 임금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처자는 수줍음을 머금은 채로 슬며시 고개를 들어 임금님을 쳐다보았습니다. 너무나 고운 자태에 임금은 그만 탄성을 질렀고 오가는 눈빛에서 찡한 느낌을 받은 임금은 이미 이 순간 이 처자를 자신의 새로운 비(妃)로 점을 찍어 놓았습니다. 모녀는 자리를 물러 나와 궁궐로부터 금은보화와 비단옷감 등 많은 선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도 못되어 궁궐에서 새로운 왕비로 결정되었으니 속히 채비를 차리어 입궐하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이 소식이 온 고을에 알려지자 우리고장에서 국보(國母)가 탄생했다며 온 고을이 축제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을 주민들의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이들 모녀는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 도 한편으로는 서러운 마음이 드는 묘한 감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즉 딸이 왕비가 되어 좋기는 하나 젊은 시절에 홀몸이 되어 오로지 딸 하나에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왔는데 이제 딸을 떠나보내면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 막막하였고, 딸 자신도 평생 자신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친정어머니를 놓아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임금의 명령이 곧바로 국법인 당시에 있어 시일이 닥쳐오니 그 딸은 떠나 갈 수밖에 없었고 화려한 궁궐에서 갖은 호사를 누리며 살게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항상 고향에 두고 온 친정어머니가 걸렸습니다. 속이 편하지 않은 나날을 서너 달 보낸 어느 날 저녁 왕비는 시름에 쌓여 어두운 얼굴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노래로 읊어 냈습니다.   “ 임아 임아 고운 님아! 하늘같은 고운 님아! 열매만 살리려 말고 뿌리까지도 살궈내주소서 ”   이 노래를 들은 임금은 “여보 왕비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오. 도대체 무슨 소리 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소” 하였습니다. 그제야 왕비는 “마마께서도 아시다시피 소첩에게는 늙은 모친 한 분이 계시지 않사옵니까? 저만 궁궐로 훌쩍 떠나와 소첩의 친정어머니는 매일 밤낮을 병고와 외로움으로 눈물 속에 홀로 지내고 계시옵니다. 나무에 뿌리가 있어야만 튼튼한 열매가 자라날 수 있듯이, 소첩이 뿌리인 모친은 모른 체하고 열매인 저 혼자만 어찌 호의호식하고 지낼 수 있겠습니까. 굽어 살펴주시옵소서”하며 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임금은 “왜 진즉 이 말을 하지 않았소. 하기는 이러한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짐의 불찰이 크오. 마음속의 근심을 모두 털어버리세요. 내일 당장 도성부근으로 이주하시도록 하여 자주 뵈올 수 있도록 하겠소.”라고 약속을 해주었습니다.이리하여 왕비는 궁궐인근에 친정어머니를 모셔두고 가끔씩 드나들며 오랫동안 영화를 누리면서 잘 살았습니다. 친정어머니의 선덕(善德)에 의해 발복하고 딸의 깊은 효성으로 친정어머니가 충분한 보답을 받는 미담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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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각은 자유지만 그래도 횡재
    옛날에 어느 마을에 어떤 여자가 부잣집 며느리로 와서 살다가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마저도 갑자기 병을 얻어 급사하게 되자 엄청난 전답과 가옥을 혼자 건사하면서 지내는데 아무래도 워낙 덩치가 커서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편, 저 건너편에 있는 마을에는 황부자라는 부유한 홀아비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이웃마을에 젊은 데다가 재산까지 넉넉한 과수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침을 삼키며 욕심을 부렸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과수댁과 합치면 새부인을 얻는데다 지금보다 두 배가 넘는 재산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횡재도 그런 횡재가 아니겠어요. 황부자는 과수댁을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워서 하나씩 착착 진행하여 나가면서 자기마을을 비롯 인근의 여러 동리에 다니 며 자기가 이웃마을의 과수댁을 좋아하여 몇월 며칠날 그 과수댁을 보쌈하여 데려 오기로 했노라고 소문을 퍼뜨리면서 과수댁을 자기집에 데려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 해버렸습니다.이 소문을 들은 이웃마을 과수댁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치듯 황당무계하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쩔 것이요. 이미 소문이 나 있어서 보쌈은 피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보쌈은 피할 수가 없었지만 과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위기국면을 헤쳐 나갈 궁리하기 시작하여 이러저러한 갖가지 묘수를 짜내고 있는데, 어느 날 오후 체장사가 골목에서 “체 사시오. 체 사시오. 헌 체도 고칩니다.” 외치고 다니는 것입니다.순간 머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과수댁은 체장사를 집으로 불러들인 뒤, 그 동안 망가져 못쓰고 있던 체를 죄다 꺼내어 고치도록 하였습니다. 모두 다섯 개나 되는 체를 고치고 나니 날이 벌써 어두워져 체장수는 급히 짐을 챙겨 길을 떠나려 하자 과수댁은 날도 어두운데 이제서야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느냐며 여기서 하룻밤 유숙하고 가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체장수 역시 이 집이 과수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은근히 접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장사꾼의 체면상 젊잖을 빼고 있었을 따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불감청(不敬請)이나 고소 원(固所願)'의 심정이었지요. 장사꾼은 과수댁이 자신을 사모하여 끌어당기는 것으로 여기면서 속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고 쾌재를 불렀고, 과수댁은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려서 반주와 함께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지자 고급스런 비단요 위에 원앙베게와 비단이불을 펴주고는 자기는 건너방에서 자겠다고 훌쩍 나와버렸습니다.아뿔사! 이게 무슨 낭패입니까? 달콤한 하룻밤을 꿈꾸던 체장수의 희망이 단번에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지요. 기분이 좋다가 말아버린 체장수는 한숨을 내쉬며 끙끙 앓다가 속옷만 입고 드디어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웃마을 부잣집의 보쌈꾼들은 이날 저녁 심야에 과수댁으로 보쌈을 허러 와서 담을 넘어서 안방으로 들이닥쳐 얼굴 확인도 않은 채 다짜고짜 이불 속에서 자는 체장수를 과수댁으로만 알고 포대 안에 집어넣고는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들은 성공적인 과수댁보쌈으로 황부자집에서 받을 사례금으로 기분이 들떠 있었습니다. 황부자는 돈 많은 과수댁을 얻어 더 큰 부자가 될 욕심에 빠져 집에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목구멍에 침을 삼켜가면서 이제일까 저제일까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골목이 소란스러우며 일행이 마당 앞에 당도하였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에 직면하였던 것입니다. 부대자루를 개봉하니 왠 늙수구레한 중년남자가 보이지 않겠어요? 이 광경을 본 황부자는 실망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황당하여 얼른 자루에 도로 넣은 채 뒷방으로 데려가 이불을 펴주며 그 안에 들어가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황노인은 보쌈하여 데려온 남자의 처리 방법이 골치였습니다. 당장에 의관을 준비 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억지로 쫓아낸다 해도 만일 관가에 고발해 버리면 그 화는 자신에게 미칠 것이 뻔하였으니까. 황노인은 이 남자의 처리를 위해 여러 가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과수로 지내고 있는 자기 제수씨에게 이 남자를 소개해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속셈을 가진 황노인은 제수집으로 가서 짐짓 시치미를 뚝 떼고는 “제수씨 계시요. 저 제수씨 시숙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차여차해서 이웃마을에 사는 과수댁 한 분을 데리고 왔는데, 옷도 없고 속옷인 상태로 이불만 둘러쓰고 말 한마디도 않은 채 웅크리고만 있단 말입니다. 제수씨가 어떻게 좀 달래어 서 마음을 풀도록 해주었으면 좋것소. 부탁 좀 할께요.” 하였습니다.그러자 그 제수는 “그야 뭐 여부가 있것습니까. 한 분밖에 없는 서방님 부탁인데 맨발 벗고라도 나서야지요. 서방님도 홀로 계시다 부인이 생겨서 좋고 저도 성님(형님-여기서는 손위의 동서를 가르킴)생기게 될 판이니 일석이조 아닙니까?” 하며 대환영이었습니다. 황노인은 자기 제수를 뒷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뒷방에 들어간 제수는 이불속에 있는 여인(사실은 남자)을 부르며 “성님! 성님! 내 말 한번 들어보쑈, 다 사람은 사주팔자를 떨쳐버리고는 못 산다. 요. 두 번 장개가고 두 번 시집가는 것도 다 인력(人力)으로는 못하는 운명이 아니것소.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분한 마음 다 떨쳐버리고 새출발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우리 사이좋게 한번 살아봅시다. 실은 나도 팔자가 세서 혼자 살고 있소” 하며 다독거렸습니다.갑자기 모르는 여인이 나타나 사정사정 해대는데, 이불 속의 남자는 금방 남자임이 탄로가 날까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속으로 끙끙대고만 있었습니다. 그 제수가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여도 아무 반응이 없자 놀려주기 위하여 “이불 속에 벙어리 양반 들어 있구만, 원 세상에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법자(벙어리의 저라도 사투리)를 다 데려왔을까.”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제수는 여러 가지 수를 써 보아도 효과를 거둘 수가 없자 마지막 수단을 생각해냈는데, 사람은 살갛끼리 부딪혀야만 친밀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말마따나 이불 속에 있는 양반도 간짓밥(간지럼)을 먹이면 분명히 말문이 터질 것으로 확신한 거야. 제수는 이불 속에 손을 넣어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간지럼을 태웠는데, 별로 기색이 없자 드디어 많이 간지러운 사타구니로 손이 갔나 봅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사타구니로 손이 쑥 들어갔는데 다리사이에서 뭔가 물컹하면서도 길다란 물체가 꽉 잡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수는 직감적으로 여인이 아님을 깨닫고 당혹스러워하며 손을 빼내려 하는데, 이번에는 이불 속에 들어있는 사람이 제수되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뜸 이불 속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이보시오. 나는 과수댁이 아니라 잘못 끌려온 남자 홀아비요. 댁에서 나의 중요한 곳까지 만져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숨기고 부끄러워 할 것이 있것소, 일이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같이 살아버립시다.” 해서 얼떨결에 새로운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한 것입니다. 제수는 자신이 시숙의 난처한 문제를 해결해 주러 이끌려 온 것을 깨닫지 못하고 시숙이 자신을 시집보내 줄려고 이러한 계략을 세운 것으로 착각하고 시숙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체장수는 과수댁이 자신을 사모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한 번의 낭패를 보았으나, 황노인의 묘수에 감쪽같이 속은 제수의 착각으로 궁지를 모면하고 떠돌이 홀아비에서 듬직한 마누라를 거느린 어엿한 가장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엉뚱한 속셈은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고 때로는 저절로 복이 굴러오는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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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위복(轉禍爲福)
    먼 옛날 어느 산골짜기에 순악질 시어머니와 마음이 악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악한 집안의 남편은 나랏일(국가의 공복 즉 벼슬아치)을 보는 집안이어서 집안 일은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이 집안에 고부 갈등이 매우 심하여 하루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사약(死藥: 독약)을 먹이려고 아들 친구를 불러 그 사약을 먹여서라도 며느리를 죽여버리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조사자: 만일 먹으면 죽는 사약이라고 한다 치면 며느리가 먹으면 죽게되는 사약을 과연 받았을까요? 제보자: 예. 내가 그 과정의 이야기를 자상하게(자세하게) 해야 헐틴디. 대충했구만요. 시어머니가 임금님도 아니어서 큰죄를 졌으니께 먹고 죽어야 한다며 사약(死藥)을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그랑께 아들친구한테는 여차여차 헌디 친구마느래(며느리)에게는 몸에 좋은 보약(補藥)이라고 쇡이고(속이고) 요령껏 맥이도록 허였것제]그래서 아들 친구는 그 친구의 어머니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친구 부인한테 갔는데 그 사약을 가지고 간 날 친구 부인은 친정집에 가고 없었습니다. 처음에 간 친구는 실패하여 그냥 오고 다음 번에 또 다른 친구더러 갔다오라고 하여 그 친구가 간 날 그 며느리는 뱀에 물려 의원에 간것입니다. 이렇게 아들 친구들을 시켜 며느리를 죽이려고 해도 갈 때마다 서로서로 방향이 엇갈려 그 사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고약한 시어머니는 그 며느리를 죽이지 못하고 자기가 자기 성질 못이겨 안달하다가, 그 고약한 시어머니만 세상을 떠나고 그 악한 며느리는 그 고약한 시어머니의 아들과 잘 살게 되었습니다. 시상일(세상일)은 다 자기 뜻대로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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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명횡사한 유생(儒生)
    옛날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어느 양반댁이 있었는데, 어떤 집이든 하나의 근심은 있다고 이 집도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뭐냐면 이 집의 아들이 장개간지 3년이 지났건만 도무지 손주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며느리가 문제가 있는 것 이 아니라, 아들에게 애기를 못낳는 증상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체높은 부잣집에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타성받이 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입양이라는 것도 없었고 양자라도 데려오려고 해도 마땅히 데려올 데가 없으니 매우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이리저리 궁리해도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아 결국 외간남자를 끌어들여 와서 자기 며느리와 동침 시켜 후손을 보려고 계책을 짠 것이었습니다.이 양반 댁에서는 며느리의 상대남자가 될 사람을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 정해놓고는 좋은 날(吉日)을 택해 그 사람을 잡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날짜는 과거 시험이 시행되는 바로 전날이었고, 취택 대상은 지방에서 올라온 신체강건하고 용모가 준수한 젊은 유생이었습니다. 양반집에서는 건장한 하인 네 명을 밤이 이슥할 무렵 한양의 중심거리로 내보내 마땅한 대상자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얼굴부터 부대를 씌워서 데려오도록 시켰습니다. 하인들은 골목에서 서성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인적이 뜸한 거리를 바삐 걸어가는 한 젊은 유생을 발견하고는 부대쌈을 해갖고 왔습니다. 그 남자는 과거를 보러 충청도에서 올라 온 23살 먹은 최생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부잣집 사랑으로 끌려들어온 최생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두려움에 떨고만 있는데, 이윽고 양반댁 부부가 들어오더니 자신을 붙들고 오게 된 까닭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실은 말이오. 우리 아들을 혼인시킨지 3년이 다되도록 손주 소식이 없어 자상히(자세히) 알아보니, 우리 아들에게 무슨 고장이 붙어 얘기가 없다고 하오. 젊은이께서 좋은 일 하는 셈치고 오늘저녁 하루만 우리 며느리하고 합궁 좀 해주시오. 그러면 우리 젊은이에게 서운치 않게 사례금도 들려주고 무사히 돌려보내 줄테니 걱정일랑은 조금치도 하지 말고 그렇게 좀 부탁하오.” 젊은이는 양반 부부의 간곡하고도 정중한 부탁에 적이 안심이 되어 그리 하겠다고 말하고는, 인자 목욕재계를 마치고 곱게 치장하고 기다리고 있는 며느리방으로 안내되었제. 며느리방에는 진수성찬으로 음식이 큰상에 가득 차려져 있고 며느리는 그 남자와 둘이 앉아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먹고는 이내 상을 물렸어. 드디어 이들 남녀는 마치 부부지간처럼 운우지정을 나눈 후 그 남자는 밀려오는 피곤을 주체하지 못하고는 어느새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양반부부의 철통같은 약속은 다 감언이설이었고 이들은 이미 하인들에게 새벽녘 먼동이 터오르기 전에 이 남자를 다시 부대쌈을 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한강물 속에 빠뜨리도록 시켜놓았던 거야. 말하자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후환 때문에 이 남자를 1회용으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어떻게 운이 좋았던지 며느리는 태기가 있었고 마침내 잘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나서 며느리의 꿈자리에 자꾸 귀신이 나타나는데, 바로 어느 날 갑자기 비명에 죽음을 당한 그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며느리는 자다가도 헛것이 보여 잠꼬대를 해대고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시부모들도 자연히 알게 되었고 시부모들은 혹시라도 이 사실이 다른 집에 알려지면 큰 낭패라고 생각하고는 대비책을 세웠습니다.그 방책이라는 것은 필시 며느리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는데, 시부모들은 며느리를 불러다가 “네 육신에 귀신이 붙었으니 너 때문에 온 집안이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너 하나 죽어줌으로써 온 집안이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칼을 입에 물고 그 자리에서 죽도록 다그쳤습니다. 며느리는 갖은 고비를 넘기고 대가 끊어져갈 집안에 아들까지 낳아 주었는데도 위로하는 말 한마디 없다면서, 그렇게도 제가 보기 싫으면 당장 죽어 없어지겠다고 울부짖었지만 차마 칼을 입에 물고 죽지는 못하고 그 날 저녁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두 명이나 되는 아까운 목숨을 억지로 죽게 하고 나더니 이 양반댁도 가세가 차츰 기울기 시작하여 형편없는 집안으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그 남자를 죽이지 않았으면 이런 일 없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었다면 비명에 죽은 남자를 위해 천도제(薦度祭)라도 지내주고 귀신을 정성껏 달래 주었드라면 며느리는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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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집(계집)은 항시 조심해라
    옛날에 어떤 영감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영감이 풍수지리에 대하여 웬만큼은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략 자기가 어느 나이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며 몇 월 며칠 경에나 운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서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영감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남아있는 부인과 자식이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겪지 않고 편안히 살아나갈 수 있도록 방책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날 저녁 영감은 부인과 아들을 불러놓고는 “내말 좀 들어들어 보오. 나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데, 부탁이 하나 있소. 내가 죽으면 나를 상여로 떠메어다가 땅속에 묻지 말고 나를 관에 넣어 우리 집 우물에다 머리 부분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거꾸로 빠뜨려 주시오. 우리집터가 소외양간의 형국인데 내가 소의 역할을 해야겠소. 그러면 우리 집이 틀림없이 크게 흥할 것이오.”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가족들은 어떻게 감히 집안의 가장을 땅에 묻지 않고 우물 속에 수장(水葬)시킬 수 있느냐며 만류하였으나, 다 우리 집안 좋자고 하는 일이며 절대 불경(不敬) 또는 불효가 아니니 꼭 그렇게 하도록 몇 번씩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조사자 : 그러면 왜 하필 머리가 밑으로 가져 넣어달라고 하였습니까? 제보자: 예. 영감의 집이 소 외양간 형국이라고 했지 않아. 그런데 소의 습성은 일어설 때는 앞다리가 먼저 일어서고 앉을 때는 뒷다리가 먼저 앉게 됩니다. 따라서 머리가 아래에 있어야 앞다리(팔) 부분이 먼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옆의 가족들은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하마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러한 생전의 부탁이 있은 후 5개월 남짓 되는 날 그 영감은 잠자리에 들어가서는 마치 잠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고이(곱게) 이승을 하직하였습니다. 옆에 사람들에게 별다른 고생을 시키지 않고 죽는 것도 큰 복이라는 말들을 하며 호상(好喪)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렇게 상을 당하자 아들은 아버지의 부탁대로 아버지의 시신을 관에 넣어 우물 속에 집어넣고는 출상당일에는 굵은 생솔나무를 안에 넣은 가짜 관을 상여 위에 얹어서 산소로 가져가 묻었습니다. 말하자면 건생이(시신을 상여에 얹어서 싣고 가지 않는 빈 상여)로 치상을 한 것이지요.이렇게 장례를 치르고 나서 그 영감의 할멈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면 당대발복(當代發福)으로 이 집안이 흥성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할멈은 한 달도 못되어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친한 이웃할머니에게 이만저만해서 우리 영감은 우리 집 우물 속에 들어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주위에 발설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고 그 노파 역시 듣는 사람에게 당신 혼자만 알고 있으라면서 그 이야기를 주위에 전파시킨 결과 단 며칠도 안 되어서 이 사실이 온 동네방네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조용히 넘어갔을 일이 온 동네방네에 다 퍼지고 세상에 자기 아버지를 우물에 빠뜨린 불효막심한 아들이 없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온갖 공론이 무성하여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우물 속에 있는아버지의 관을 꺼내어 다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참았으면 될 일을 입이 가벼워서 못 참은 탓에 복을 털어내고 집안 망신까지 가져온 것이지요. 이러한 꼴을 보고 나서 동네사람들은 '이핀네(여편네)들은 넘(남)이다.', '지집이 요망하면 도장(곳간)안에 범이 든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고들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소가 이 샘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했다하면 이 집이 크게 흥하여 부자가 되었을 텐데, 자발없는(입이 가벼운) 노파 때문에 큰 복을 놓치고만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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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은 도둑년이다
    옛날에 어떤 양반이 있었는데 즈그(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모실라고 좋은 땅을 장만하였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고을에서 영하다는 풍수지관을 불러다가 묏자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지관은 고을에서는 깨나 알아주는 풍수여서 명성이 자자할 뿐 아니라 초빙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살아생전 호강한번 못시켜드린 부모님이지만 늦게나마 좋은 음택(陰宅)을 마련하여 편히 계시도록 하려는데 금전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좌향을 잡은 후 5명의 삯군을 사서 부모님의 묏자리를 큼지막하게 팠는데, 친정집에서 친정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장(移裝)할 묏자리를 잡는다는 소식을 들은 이 집의 큰딸이 친정집의 산에까지 왔었습니다. 묘지의 토광(土壙)을 다 파놓으니깐 마치 명망이 있는 제후의 무덤처럼 그럴듯하게 보이느 것이었습니다.작업을 마치자 주인양반과 지관이 무덤자리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주인이 “참으로 좋은 자리 같습니다. 여러 양반들이 고생하여 땅을 파놓으니 모양새가 납니다.” 하니, 지관이 “예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곳이 앞으로도 물만 나지 않는다면 육법정승(육조판서의 그릇된 표현)이 날만한 자리입니다.” 하였습니다.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딸은 이곳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임을 알아차리고, 이 묘자리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시댁 것으로 만들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는 식구들과 함께 친정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일의 도모를 위해 식구들이 적게 자는 친정집 아랫방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였습니다.말이 잠을 자는 것이지 실지로는 잠을 자지 않고 식구들이 모두 잠드는 심야를 기다려 몰래 물동이를 들고 산으로 향하였어요. 여자 혼자 밤길을 나선다는 두려움도 잊은 채 산에 도착하여 인은 계곡에서 부지런히 동이에 물을 담아다가 무덤의 토광 안에 퍼부었습니다. 한참을 퍼 날라 토광 안에 물이 넘실거리게 되자 딸은 ‘이제는 됐겠지.’ 하며 집으로 돌아와 슬그머니 잠자리에 들어갔고, 이튿날이 되어 온가족들이 음식준비 등 이장할 모든 채비를 갖추어 미리 손질해 놓은 산으로 갔습니다.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가? 어제까지 축축한 기운이 하나도 없이 그렇게 좋았던 묘자리 안에 물이 나 있었습니다. 지관의 말처럼 물만 안 나면 최고의 명당자리인데 물 때문에 못쓰는 무덤이 되어버린 겁니다.친정식구들은 낙심천만하여 이장작업을 포기하고 일단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얌체같은 딸은 속으로 쾌제를 부르며 한 달도 되기 전에 자기 시압씨(시아버지) 시엄씨(시어머니)의 유골을 파와서 친정집 묫자리에다 이장을 하였습니다.그러나 친정아버지가 부모를 위해 그렇게 힘을 들여 마련한 묘지를 욕심 많은 딸이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몰래 빼앗아간 것이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딸의 집에서는 맨날 우환만 뜰끓었는데, 느닷없이 사위가 낙상사고를 입지 않나 소도둑을 맞지 않나 크고 작은 사고가 줄을 이었습니다. 여러 날의 큰 고민 끝에 점을 쳐보니 시부모의 묘를 잘못 써서 그런다고 하였습니다. 뒤늦게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딸은 즉시 시부모의 묘를 원래자리로 옮기고 자신의 잘못을 친정아버지께 고백하고 사죄하였습니다.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친정아버지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딸에게 “니(네)가 너의 시댁을 위해서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좋다. 그런나 사람의 일은 억지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고 순리가 있는 법이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욕심은 버리고 우선 남을 위해 많은 덕을 쌓아라.”고 젊쟎게 타일렀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어쨌든 없어질 뻔한 명당을 찾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며 다시 좋은 날을 택하여 부모님의 이장을 하였습니다. 이장 이후 친정집에는 다시 경사스러운 일이 많아지고 살림도 날로 불어나 가문이 융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친정집의 복까지 억지로 빼앗아가려는 딸들의 행동방식 때문에 ‘딸들은 모두 도둑년’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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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부와 박처사
    옛날에 박주부와 박처사라는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님은 양택과 음택을 찾아내는 지리학자 즉 지관풍수였고 동생은 동물의 울음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즉 지음(知音)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이들 형제가 명당처를 잡으러 길을 출발하여 깊은 산골의 고갯길에 접어드니 큰 까마귀 하나가 떡갈나무 위에서 깍깍거리고 울었습니다.동물의 울음소리를 알아듣는 동생이 가만히 들어보니 임하륙(林下肉) 임하륙(林下肉) 하였습니다. 뜻인 즉 ‘숲속 나무 밑에 고기라’ 아무래도 뭐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고 여긴 형제는 인근 숲을 뒤져보니, 과연 숲속의 널펀한 바위위에 소를 잡아서 불에 끄슬러서 구워놓은 큰 고깃덩이가 얹혀 있었습니다. 백정 소 도둑 놈이 소를 훔쳐서 고기를 팔려고 밤새도록 준비를 해놓았다가 날이 밝자 조심하느라고 다른 곳에 물러나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이들 형제들은 맛있게 그슬려 놓은 고기를 보니 군침이 돌아 한피짝(한쪽)의 뒷다리를 떼어다가 불고기로 해 먹었습니다.그런데 소도둑의 신고를 받은 관가에서는 관원들에게 비상을 내리고 인근 고을에도 알려 소도둑 색출에 즉각 나섰습니다. 자동차가 없던 옛날에는 도둑이 소를 훔치면 천상 걸려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고, 잘 걷지 못하는 늙거나 병든 소 또는 포위망이 삼엄할 때는 잡아서 몇 사람이 고깃덩이를 들쳐 메고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불고기를 구워먹느라고 불을 피우니깐 연기가 났습니다.관원들이 잃은 소를 찾아 나서는데 먼 곳의 산에서 연기가 나고 언뜻 의심스러운 기색이 들어 달려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죽은 소가 보이고 한쪽에서는 고기를 구워 먹기까지 하거든. 증거물까지 있는 상태에서 이들 형제는 영락없이 도둑으로 몰려 관가에까지 끌려와 고을원님 앞에서 문초(問招)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 형제는 단지 까마귀가 ‘임하륙 임하륙’ 하길래 가서 보니, 고기가 있길래 먹은 죄밖에 없고 절대 소를 훔치지 않았다며 단지 죄가 있다면 짐승의 울음소리를 잘 알아듣는 죄 뿐이라고 눈물로 하소연을 하였습니다.원님이 듣건대 이들 형제의 말이 언뜻 거짓은 아닌 것 같아서 정말로 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원님은 비밀리에 이방을 시켜 관아에 인접한 민가의 제비집에서 새끼 4마리를 모두 꺼내다 감추도록 해놓았습니다.새끼를 잃은 어미제비는 빨래줄에 앉아 슬피 울부짖고 있는데, 이 순간 원님이 형제를 불러내어 그 동생에게 “여보게 젊은이 저 위에 있는 제비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동생은 “골불요(骨不要) 육불요(肉不要) 모불요(毛不要)의 삼불요(三不要)니 내 자식이나 빨리 내놓으시오”라고 말하고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뼈와 살과 털이 갖추어진 내 자식이 있으니, 이러한 것들이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이들의 신통력에 감탄한 원님은 무릎을 탁 치며 ‘과연 대단한 녀석들이로구나 당장 이들을 풀어주어라’고 명하면서 놀라워하며 혼잣말로 중얼댔습니다. 그러자 이들 형제들도 짐짓 원님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조금 큰소리로 ‘승부지자(僧父之子)라 말도 많다.’고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은근히 원님을 대놓고 모욕하려는 것이 괘씸하고 불순하기는 하였지만, 일단 방면(放免)을 명한터라 다시 혼내줄 수도 없었고 혹시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원님은 하루 종일 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퇴청한 후 석식을 마치고 나서 조용한 뒷방으로 늙은 모친을 불러 낮에 들은 이야기를 조곤조곤 말씀드렸나 봐요.모친은 “내가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엇을 더 이상 감추겠느냐? 사실은 내가 출가해 와서 몇 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어 절에 불공을 드리러 다녔다. 그래도 별 효험이 없었는데 아마 네 아버지가 애를 못 낳았던가봐. 결국에 어쩔 수 없이 스님하고 동품하여 네가 태어난 것이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이들 형제들에 의해 자신의 탄생비밀까지 알게 된 원님은 ‘박주부 박처사’ 형제들의 능력이 비범함을 알고 정사를 펴는데 많은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들 형제들도 어진 원님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한껏 펼쳐 보일 수 있었습니다. 원님과 형제들의 합심으로 이 고을이 주위의 고을들보다 크게 발달하였음은 물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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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수를 면하게 한 조상음덕
    청옥동 신촌마을에는 마을 앞길을 따라 망월천 상류인 조그마한 개울이 흐르고 있습니다. 무등산 계곡에서 발원한 이곳 시냇물은 예전에는 수량이 꽤 많았으나, 광주시민들의 식수원인 제4수원지가 건립된 이후로는 겨우 바닥이 마르지 않을 정도록만 흐르고 있습니다.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신촌마을은 대대로 남평문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오고 있으며 마을 뒤편에는 문씨제각과 균산정(均山亭)이 있습니다.이 마을 문재근(文在根)옹의 증조부이자 균산정 건립의 주인공인 문인환 할아버지에 대해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어느 해 여름에 장마가 극심하던 날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마을앞 개울이 지금보다 넓고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날따라 마치 하늘이 구멍이 나서 양동이로 퍼붓듯이 폭우가 내려 마을앞 개울이 붉덩물로 넘실대며 차츰 민가에까지 차올랐고 이러다가 종국에는 마을 전체가 떠내려가지 않을까 염려해야할 판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홍수가 나게 된 것은 물론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이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인근의 들판에 농사지을 물을 대기 위해 물막이둑 즉 보(洑)를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수리관개시설이 충분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농사의 풍흉년이 오로지 충분한 봇물의 확보여부에 달려있었고, 그러다 보니 굵은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튼튼한 보를 설치하였던 것이었습니다.허나 이렇게 마을민들의 농사편의를 위해 설치해둔 고마운 봇둑이 마을을 황폐화 시키는 장애물이 될 줄이야! 상황이 다급해진 문인환 옹은 마을 뒤편 남평문씨 제각에 제를 올리고 제발 마을에 큰 재앙이 없도록 조상님께 빌었습니다. 문인환 옹이 제를 마치고 큰물이 넘치는 봇둑근처에 걸어내려오니, 갑자기 개울 건너편 당산나무 옆에서 흰두루마기에 긴 수염을 기르고 있는 선대(先代) 할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그 할아버지가 혼잣말로 ‘아! 이거 큰일나겠구나 저 보를 무너뜨려야 우리 신촌마을이 살아날 수 있겠구나.’고 외쳐대며 지팡이로 보를 가리키니 일순간 보가 무너져 파도 같은 물줄기가 아래로 쏟아져 내려가면서 물바다가 될 뻔한 마을을 구해내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적적인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훌륭한 조상님들의 높은 음덕으로 가슴깊이 감사히 여겨왔으며 이후 거개가 문중원인 부락민들이 더욱 애친경장(愛親敬長)하며 상호부조(相互扶組)하는 모범 동족부락으로 가꿔오고 있습니다.   한편, 마을 위쪽의 개울 한가운데에는 호랑이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있습니다.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어느 봄날 동네인근 사찰의 탁발승이 허름한 행색으로 마을에 들어와 시주를 강요하며 마을사람들에게 억지를 부리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 승려를 도둑으로 몰아 밧줄로 옭아매고 뭇매를 가하여 쫓아버렸습니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중이 모욕을 당한 소식을 들은 사찰의 주지스님은 마을사람들을 괘씸히 여겨 주민들을 혼내줄 궁리를 하였습니다. 궁리 끝에 주지스님이 감쪽같이 평복으로 변장하고 마을로 들어와서는 ‘이 마을은 호랑이 바우 때문에 극심한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만연하여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자,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는지 그 비방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변장한 스님은 산에 가서 생솔가지를 쳐다가 바위 주위에 빙둘러 쌓아놓고 불을 피워 바위를 두 쪽으로 쪼개내야 마을이 평온해진다고 일러주고는 홀연히 마을을 떠나버렸습니다.마을민들은 이상한 떠돌이 남자(스님)가 시킨대로 산더미같은 나무를 차곡차곡 쟁여놓고 불을 지르니 어마어마한 불기둥 솟아오르며 뜨거운 열기로 바위가 둘로 갈라져버렸습니다. 바위가 깨진 후로 그 해부터 마을에는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말라죽고 전염병까지 창궐하여 마을이 황폐화될 조짐을 보였습니다. 뒤늦게야 마을재앙의 원인이 호랑이 바위를 건드렸기 때문인 것을 깨달은 주민들은 두동강이 난 바위를 돌로 괴어 원래 모양대로 맞댄 후 그 틈새를 회반죽으로 메꾸어 부착시키고 불에 그을린 자국을 말끔하게 닦아내니 재앙이 금새 사라지고 다시 풍년이 찾아왔습니다.신촌마을 사람들은 호랑이 바위를 마을을 수호하는 신성한 상징물로 여겨 호랑이 바위에 어린이들이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하고 큰비가 내려서 바위에 흙탕물 자국이나 나뭇가지 등 이물질이 끼어있으면 수시로 정결하게 하여 지금까지 잘 보존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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