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지렁이탕과 효심 설화

옛날에 광주 북쪽에 있는 마을에 바우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근데 그에게는 눈이 멀어버린 봉사 어머니와 매우 착한 아내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스무 살을 갓 넘겨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 외아들 양육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였는데 대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 밭일이며 바느질하기, 장 담그기, 잔칫집 이바지음식 만들기 등 할 수 있는 갖은 품팔이를 다하여 겨우 연명해 나갔었는데 너무 젊어서부터 힘든 일을 하여서 나이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 시름시름 온 삭신이 아파오더니 그만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음식섭취는 보잘 것 없는데 맨 날 하는 일은 고되다보니 영양부족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한 아들은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모친을 등에 업고 여기저기 신통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녀 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바우네 집에서는 당장에 힘들게 되니 이웃사람들이 서둘러 바우의 혼인을 치르게 되었고 평소 어머니의 심덕이 좋은 탓이었는지 이웃마을에 사는 마음씨 좋고 효성이 지극한 처자가 며느리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따뜻한 밥을 지어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수시로 팔다리를 주물러서 몸이 불편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더 말할 수 없는 효부였습니다. 새로 장가든 바우는 몇 달 간의 신혼을 보내고 나서는 마냥 이러고 살 수만 없다는 결심을 하였고 꼭 한번 집안 살림을 번성시켜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리라는 각오로 멀리 행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어머니와 단둘이 남은 며느리는 어떻게 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시어머니의 눈을 보일 수 있게 할까 하는 궁리를 다하였고 마침 어떤 사람으로부터 멀어버린 눈을 뜨게 하는 데는 토룡(土龍:지렁이)처럼 영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날부터 며느리는 자기 집 앞뒤 마당의 흙을 샅샅이 뒤져서 지렁이를 잡아다 지렁이탕을 끓여서 드렸습니다. 자기 집 마당의 지렁이를 모조리 잡고 나서는 며느리는 부끄러움도 잊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지렁이를 잡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지렁이는 기름지고 부식된 땅에서 많이 산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간 정성을 다하여 지렁이탕을 끓여드리니 시어머니는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후루룩거리며 드시고는

도대체 이것이 뭔디 이렇게 항시 먹어도 맛이 좋은거냐!”는 말을 하셨고, 드디어 석 달이 넘는 오랜 행상을 마친 아들이 어느 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서 문안을 드리기 위해 방안을 들어가 보니 어머니가 상위에 놓인 뚝배기에서 무엇을 부지런히 드시고 계셨습니다. 아들은 궁금증이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렁이를 끓인 탕을 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너무 황당하여

어머니! 원 세상에 징그럽게 무슨 지렁이를 다 잡수세요.” 하고 소리를 치니

난데없는 아들의 소리에 울컥 비위가 상한 어머니는

뭣이라고. 내가 지금 지렁이를 먹고 있다고?” 하며 되물었습니다.

모자간의 대화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며느리가 걱정이 되어 방에 들어왔는데 아들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 말이 진짜냐? 어디 한번 볼까?” 하며 자신이 눈먼 사실도 잊은 채 감겨진 눈꺼풀에 힘을 주자 순간적으로 눈이 번쩍 떠지게 되었으나, 이와 동시적으로 며느리가 하는 외마디소리를 크게 지르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며느리의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바우는 어쩔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어머니가 눈뜬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마음씨 착한 아내의 눈이 멀어버린 것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었는데 정신을 가다듬은 바우는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따져보아 이렇게 된 원인을 캐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방밖으로 아내를 데리고 나온 바우는 아내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조곤조곤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시어머니의 눈을 낫게 하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힘들게 지렁이를 잡아다가 탕을 끓여 주었다고 하니 고생이 많았다고 하며 칭찬을 해주었는데 그러면서 아내에게 그 지렁이 탕의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내는 삐죽거리며 얼른 답변을 못하였습니다. 사실 미끈미끈한 지렁이를 손으로 잡는 것까지는 꾹 참고 하였지만 징그럽고 구역질이 나서 선뜻 맛도 보지 않고 시어머니께는 좋은 약이라고만 둘러대고 드시게만 한 것이었습니다. 신랑 바우는 그제서야 무릎을 탁 치면서

그야 그렇지. 탕을 끓여드리는 효심이 있기는 하였으나 효성이 꽉 차지는 못한거로군. 자네가 이왕 시부모 봉양을 하는 김에 조금만 더 노력을 했다면 좋을 것인데. 그렇다고 너무 그리 괘념은 마시오.”

하며 원인파악과 동시에 아내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바우는 다시 지렁이를 잡아다가 아내에게 끓이는 방법을 배워서 끓인 다음 한 그릇을 퍼내어 마음속으로

제 아내의 부족한 효성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대신 속죄를 드립니다.”라고 일용수를 하고서는 용기를 내어 한 숟갈을 자기 입안에 떠 넣는 순간 옆에 있던 아내의 감긴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이리하여 세 식구는 세상의 있는 복 없는 복을 누리며 잘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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