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점동이 아저씨의 지혜

옛날 강진땅에 점동이라는 청주김씨의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눈하나가 멀어버린 외통보(애꾸눈) 였어요. 그는 외통보인데다 딸린 아이가 9남매나 되어 그 날 그 날의 끼니때 입에 풀칠하기도 힘겨웠어요. 점동아저씨는 어떻게 하면 어린 자식들을 안 굶기고 남부럽지 않게 집안살림을 한번 일으며 세워볼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였습니다. 솔직히 학식이라면 '낮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쟁이였지만, 사리의 판단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있어서는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이거지.

어느 해 봄날 그는 드디어 괴나리 봇짐하나 들쳐메고 다 쓰러져 가는 집안의 '융성'(隆盛)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도에 올랐어요. 그는 십여리쯤 걸어서 첫 동네에 이르러서 한지로 된 창문의 구멍이 가장 많이 뚫린 집을 다짜고짜 찾아가서는, 이 집 안주인에게 다가가서는 '갑자 을축 병인 정묘------갑자 을축 병인 정묘------' 흥얼흥얼대면서 "이 집 자손들이 참 많습니다" 하는 거야. 그러자 안주인은 학문깨나 들어있는 도사(道師)쯤으로 알고 "우리 집 큰놈의 신수가 어떻습니까?" 물으니, 그 양반은 "매우 좋으니 (벼슬이) 높게 되겠습니다"라고 말해 주고는, 이서 작은놈을 물으니 '예! 재복이 많아서 큰 부자로 잘 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안주인은 기분이 너무 좋아 점심 한 상을 걸판지게 차려다가 무식쟁이 도사에게 가져다 주어서 점동아저씨는 너끈히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고 문을 나설 때는 쌀 몇 되까지 얻어서 나왔지.

혹시 무슨 건수(件數)나 없ㅇ르까 하며 마을의 이집저집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데 마침 어느 집에 물레바퀴의 물렛살이 고장난 집을 발견하였어. 그는 옳다되었다하며 바로 들어가서 "나는 지나가는 길손인데 보아하니 물레가 잘 안 고쳐지나 봅니다. 제가 한번 고쳐보면 안될까요" 하니 열 번이라도 그러라고 하는 거여. 그는 물렛살 간격을 고르게 하고 버팀목을 끼워 넣어 말끔하게 고쳐내니 물레를 고치려고 한나절 이상을 낑낑대던 집주인은 비상한 손재주에 놀라워하며 그 사례로 닷 되의 보리쌀을 싸줬어. 이리저리 다니면서 조금씩 곡식을 얻는 점동아저씨는 다시 이웃동네에 도착하여 한 민가에 저녁을 얻어먹고 그 집의 허름한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묵었어요.

이튿날 다시 일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부잣집에서 암소가 새끼를 낳고 있는데, 구경삼아 그 집으로 들아가 보니 암소는 새끼를 낳지 못하였고 그 집 식구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거야. 점동이 아저씨가 나서며 "나는 저 건너 마을에 사는 김아무개인데 내가 송아지 낳는 것을 많이 받아봐서 압니다만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아마 순산할 것입니다" 하면서 똥개(밭쟁기를 말함. 극젱이.), 보습, 소금 한 접시를 외양간 앞에 차려놓도록 하였어.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하자마자 송아지를 순산하였는데 그것도 쌍둥이를 낳았어. 이 집에서는 아조(아주) 영한 소산파 아저씨라며 치하하면서 보릿쌀 한 가마를 사례로 주었지. 점동아저씨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서 지게하나를 빌려 지금까지 모은 곡식을 얹어 50리나 떨어진 자신의 집에다 갖다놓고 다시 돌아왔어요.

또 다른 마을 향하여 길을 가고있는데, 들판의 논에서 어떤 영감이 쟁기질을 하는 광경이 나타난 거야. 소가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고 영감은 소리만 쳐대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소가 고개를 왼쪽으로 쳐들고 끙끙 신음소리만 내는 것 아니것어? 영감은 "저 놈의 미련한 소새끼가 일을 하기 싫으니까 가지 않고 아픈 시늉만 하고 있다"고 열만 내고 있었어. 점동아저씨는 그 영감한테 가서 "영감님! 소도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소가 움직이지 못하고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어디 자세히 한번 살펴봅시다" 하니 그제서야 수긍을 하는 거야.

영감을 소 앞으로 데리고 가서는 점동아저씨가 코뚜레를 만져보니 코뚜레의 나무가 소의 콧살 안에서 부러져 나뭇결이 바늘처럼 들떠 가지고 소의 콧속의 살에 박혀 들어가서 소가 고통스러워했던 것이여. 말하자면 비접든다고 하여 나무막대기를 만지다 나뭇결의 거스러미가 일어나 살갛에 가시가 박히는 것과 같은 원리제. 점동아저씨는 소에게 코뚜레나무의 비집이 들지 않도록 코뚜레를 부여잡고 조심스레 코밖으로 빼냈지.

그제서야 쟁기질을 하던 영감은 "내가 너무 무지했나 봅니다. 당신 아니었으면 참말로 멀쩡한 소 한 마리 잡을 뻔했습니다. 아무리 말 못 허는 짐승이라고는 하지만 얼매나(얼마나) 아펐을 께라우" 하며 죄스러워 했어. 영감님은 길손(점동아저씨)에게 소를 맡겨놓고 집으로 달려가서 예비용으로 마련해 헛간에 걸어둔 코뚜레를 낫으로 잘 다듬고 된장을 묻혀놓고는 아깝지만 고마운 길손에게 겉보리 한 말을 주기 위해 자루에 담았어요. 코뚜레를 손에 들고 보리자루를 어깨에 메고 돌아온 영감은 둘이 힘을 합쳐 코뚜레를 새로 끼워 넣고는 보답으로 이 길손에게 보리자루를 건네주었어.

곡식자루를 들쳐메고 세 번째 마을로 들어선 점동아저씨는 또 새로운 일감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는데, 쉰 살이 넘어 보이느 여인이 "나 죽것네 나 죽거네" 하면서 마당에서 훌떡훌덕 날뛰고 있는 거라. 조금 괴이하기는 하였으나 들어가 보니 이웃집여인 한사람이 옆에 있는데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보고 있는 거야.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자세히 살펴보니 이웃집 여인과 함께 고춧가루를 빻기 위해 디딜방아에다 맵디매운 고추를 가득 넣고 찧고 있었어.

아 그란데 옛날에는 여인들이 지금처럼 팬티를 입는 것이 아니라 헐렁한 마포 속곳에 속바지나 입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디딜방아 확 옆에서 고추가루를 찧다보니 고추의 매운 기운이 헐렁한 속바지 사이로 풍겨 들어가 여인의 사타구니ㅏ이가 불이 나서(욱신거려서) 그런 것이었어. 사타구니 사이가 사뭇 확확 달아오르니까 못견디어 그런 것이었제.

점동이 아저씨는 어색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낸다는 심정으로 "아주머니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미지근하게 물을 데워 올 테니 그 안에서 좌욕을 하면 금방 가라앉을 겁니다" 하고는 벼락같이 물을 데워다 목욕을 하도록 가져다 주었어. 반시간 정도나 물에 담그고 나니 후끈거리는 기운이 다 빠져나가서 그 여인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 점동아저씨는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침착하면서도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는 묘안을 재빠르게 짜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잇었지요.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응급처방으로 곤경에 처한 많은 농민들을 위급에 벗어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소소하나마 얼마간의 곡식이나 돈을 얻어서 자식들 먹여 살리고 집안을 일으키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지. 그는 길지 않는 유랑생활로 살림을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던 거야.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에는 유랑생활로 살림을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던 거야.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에 "거짓말이 올베논(올벼논) 서마지기보다 낫다"는 것처럼, 이 얘기는 그 어떤 재물이나 밑천보다도 사뭇 위급할 때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는 이미(의미)가 담겨있는 것이지.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