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아이의 현명한 판결

오래 전에 순창 금과의 어느 고을에 50에 접어드는 두 중년 남자가 살고 있었드래요. 두 사람은 둘도 없이 친한 친구사이로 틈만 나면 만나서 노상(항상) 같이 지내는데, 한사람은 아들을 둘이나 두어 후사(後嗣) 걱정이 전히(전혀) 없는데 다른 한사람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니었어.

[조사자: 그런데 왜 아들을 못낳았다요. 제보자: 음, 밭은 괜찮았는디 씨앗이 시원치 않았는 갑지. 말하자면 남자가 애기를 못 낳는 거여.]

아들을 둔 사람이 광수고 아들이 없는 사람이 영식이라는 사람이었어.

어느 비오는 날 이 양반 둘은 동네 사랑방에서 나와 저녁무렵까지 놀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가자, 영식이가 친구 광수에게 "어이. 자네에게 긴히 부탁하나 헐 것이 있네" 하니, 광수라는 사램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디 뭐 돈들고 부담되는 일만 아니다면 그야 들어주고 말고" 라고 하는 거야.

이 말은 절대 비밀이니께 자네고 나만 알고 있어야 허고 딴데서는 일체 발설해서는 안 된다며, 귀 좀 빌리자고 하여 부탁할 이야기를 귓속말로 한 거여.

이 말은 절대 비밀이니께 자네고 나만 알고 있어야 허고 딴데서는 일체 발설해서는 안 된다며, 귀 좀 빌리자고 하여 부탁할 이야기를 귓속말로 한 거여.

부탁한 내용은 뭐냐면 광수 자네가 아들을 잘 낳으니 며칟날 저녁에 내 옷으로 갈아입고 심야에 우리 집 안방으로 슬며시 들어가서 내 마누라하고 하룻저녁 동품을 하고 동트기 직전 우리 집을 빠져나와 다시 서로 옷을 갈아입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자는 것이었어.

이 말을 들은 광수는 친구 마누라를 한번 품어본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자고 하였제.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자 두 사람은 구체적인 실행계획에 착수하여 역사적인 거사 일을 닷새 뒤로 잡고 그 날 저녁밥을 먹는 즉시 사랑방에 나와 자정무렵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영식이집으로 광수를 들여보내기로 작적을 짰다 이것이제.

광수의 목소리도 영식이 쇠리처럼 내기 위해 낄낄대며 목소리 흉내연습까지 하였고 가급적이면 말을 하지 않도록 당부하였고 그 뒤로도 한치의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서 또 연습을 하고 나서 드디어 약정한 날이 돌아왔어. 두 사람은 이른 저녁을 든든히 먹고 최대한 신체의 상태를 잘 유지하기 위해 누워서 쉬면서도 과연 무사히 작전이 치러질 수 있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제. 열한시경이 되자 일단 옷을 갈아입고는 방에 들어가서 나눌 대화를 실연해 보았어요.

흐흠 똑똑 " 여보 나왔소. 나라니까"

"응 왜 이렇게 늦어다요"

"어. 동네 사랑방에서 묵내기(추렴하여 먹을 것 사먹는 일) 화투 몇 번 치다보니께 이렇게 됐네"

"어서 들어와 옷갈아 입고 자시우"

드디어 방문을 열고 이불 빈곳으로 들어가 슬스머니 누우면 성공한다. 비장한 각오로 영식의 집으로 향한 광수는 집에 도착하여 아까(직전) 번의 연습처럼 자연스런 대화로 방까지는 무사히 들어왔어.

영식의 마누라는 "여보 컴컴해서 잘 안보이니 호롱불을 켜야겠어요. 내가 켤게요."(이러면서 성냥갑을 집어들려고 한다)

가짜영식은 속으로 기겁을 하며 "불은 무슨 불. 웃옷만 벗으면 되니까 괜찮아"

하며 성냥갑을 뺏어다 도로 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어.

가짜영식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참동안 그대로 가수면을 취하다가 슬며시 새로운 마누라 옆으로 다가가 생각지도 못한 운우지정(雲雨之精)을 나눌 수 있었제.

가짜영식은 동품을 하고 나서도 깊은 잡을 자지 못하고 선잠에 들어있다가 새벽 일찍 집을 빠져나가 진짜 영식이에게 작전의 성공을 알리고 다시 변복을 하고 자기 집에 돌아갔어. 광수는 자기집에 돌아가니 자기부인이 걱정되어 거의 뜬눈으로 날을 새다시피 하였다며 도대체 어디를 갔다 이제 오느냐며 심하게 추궁하는 거야. 인자 광수는 동네사랑방에서 밤늦도록 놀다가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인 것이 그만 새벽까지 자버렸다고 둘러대었지.

한편, 영식의 부인은 광수와 그 날 하룻밤을 잔 이후로 태기가 있어 아들을 보게 되었다. 영식은 어렵게 어렵게 얻은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하며 정성으로 길러내어 용모가 준수하고 언변과 문장이 뛰어난 준재로 성장하였어. 왠만한 벼슬 한자리는 해먹을 만한 인물감이라고 은근히 자식욕심이 나기 시작하였어. 사실 내가 무릎이 부르터져 가면서까지 고생을 해서 낳은 자식인데 호사는 엉뚱한 내친구가 받는 것이 아니여. 아무래도 동네방네 내아들이라고 선포하고는 내가 뺏어와야 쓰것어.

이렇게 마음먹은 광수는 어느 날 오후 조용히 친구 영식을 사랑방으로 불러내어 "너 니아들 나에게 도라(달라). 핏줄은 댕긴다고 저애만 보면 내가 죽것다. 내가 키울란다"고 날벼락같은 소리를 하는 거여. 이에 질세라 영식도 "야. 너 친구간에 그럴 수 있냐.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한 일이고 잘대 뒤끝이 없기로 했지 않냐.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맞서며 옥신각신하였어.

이때 마침 서당에 다녀오는 영식의 아들이 공교롭게도 사랑방안에서 큰소시로 옥신각신 하는 소리를 듣게 됐는데, 방안에서 자기아버지와 친구분이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여. 그 아이는 한참 이야기내용을 엿듣고 나니까 자신의탄생비밀을 대략 알게되었지. 이후로도 두 양반이 수시로 자기문제로 싸우는 것을 안 아이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두 분의 의를 상하지 않고 순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여러 날을 고민하엿어. 고민 끝에 좋은 꾀를 생각해낸 아이는 그 꾀를 실행할 기회를 노렸는데, 한 보름정도 경과한 후 사랑방 앞을 다시 지날때 그 날도 두분이 똑같은 내용으로 입씨름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 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 " 두 분이 왜들 싸우십니까. 보아하니 저 때문에 그러시는 듯 싶습니다. 제가 딱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저기 들판에 나란히 밭 두 뙈기가 있다고 합시다. 하나는 갑(甲)이라는 사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을(乙)의 것인데, 봄이 돌아와 갑이 자기밭에 씨앗을 손으로 휙휙 뿌리는데 너무 세게 뿌려서인지 을이라는 사람의 밭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면 그 곡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비록 씨는 갑이 뿌렸지만 을의 밭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을의 것 아닙니까. 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씨는 광수어르신께서 뿌리셨지만 기르시기는 지금의 아버지가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의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으니, 다시는 이러한 일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라고 이치적으로 설복을 하드랍니다. 어린 아이의 말을 듣고 이후로는 두 사람의 다툼이 없어지게 되었고 이아이는 양아버지를 친아버지로 알고 극진한 효성으로 모시며 높은 벼슬을 얻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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