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명판관의 원님

전라도 어느 고을에 앞뒷집에서 총각과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총각이 17살을 먹고 큰애기는 15살이었다고 그래요. 총각은 갈방도령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그러한 모습에 반한 이웃집 큰애기는 은근히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났으나 마음만 졸일 뿐 마음을 나타낼 기회가 좀처럼 오지를 않았어요. 밤이면 밤마다 총각이 글읽는 소리를 담 옆에서 몰래 듣는 것을 일과처럼 되풀이하다가 어느날은 총각의 글읽는 소리가 힘이 없고 처량하게 들리니 이를 핑계거리로 담을 넘어 총각집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총각집은 지체높은 양반집이라 마당을 빙둘러 연못이 근사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나 그 큰애기는 당돌하게도 자기 집 담을 넘어 맨발로 연못을 건너서 총각의 글방 앞에 당도한 것이지.

야밤에 느닷없이 나타난 이웃집 순이를 보고 차돌이는 "야! 너 이슥한 밤중에 웬 일이냐? 너는 무서움도 없는 갑다"며 깜짝 놀랐제.

순이가 집에 있는데 하도 심심해서 오빠하고 이야기좀 하고 싶어 왔노라고 하자 한순간 한순간이 아쉬운 사람이다. 너 정신 좀 차리게 해줄 테니 저기 연못에 가서 창포줄기 서너 가닥을 촐겨가지고(끊어가지고) 오너라 " 시켰어.

수초(水草) 줄기를 끊어오자 차돌이는 순이의 온몸을 인정도 사정도 볼 것 없이 마구 휘두르며 두들겨 패어 마침내 수초줄기가너덜너덜 헤어져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고서야 매질을 멈추었습니다. 어찌나 힘껏 두들겼는지 순이의 어깨죽지의 살집이 터져 피가 흥건히 흘러내릴 정도였어요. 살집이짓물러져 헝겊으로 부랴부랴 피를 멈추게 하고 다시는 절대 찾아오지 말도록 단단히 훈계하여 돌려보냈어. 이웃집 처녀는 앞집오빠의 단단한 결심을 확인한 뒤로는 마음은 있었지만 아예 단념해버렸어요. 그 큰애기의 어깨에는 지난번에 월장하였다가 두들겨 맞을 때 생긴 길다란 흉터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있는 거야.

처녀는 나중에 그 고을 원님의 아들에게로 시집을 가게 되어 상당한 영화를 누리게 되었고, 반면 그 앞집총각은 관운이 부족하였던지 과거도 못하고 그럭저럭 시골에 묻혀 살게 되었어요. 다른 여인과 혼인하여 슬하게 자녀를 다섯이나 두었고 큰 아들이 열여덟이 되니 장개(장가)를 보냈능갑디다. 아들과 미너리(며느리)를 한집에서 데리고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있는데 무슨 날벼락인지 결혼한 지 5개월 무렵부터 아들이 이름 모를 병에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두달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답니다. 졸지에 미너리는 청상과부가 되었고 혈기에 넘치는 젊은 여자가 혼자가 되버린께 인자 저녁이면 몸부림을 칠게 아니겄어요. 남자를 알아버린 상태에서 갑자기 되니까 그럴 것 아니것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아버지는 저녁마다 순행을 치며 살펴보았대요. 며느리는 외로움에 밤새도록 잠을 못 들고 끙끙대다가 겨우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드는 것이 부지기수였답니다.

[조사자: 결혼한 지 5개월이나 되었는데 며느리에게 아직 아이는 없었을 까요?

제보자: 아직 없었던가 보지. 아이가 있었으면 그 아이에게 희망을 걸고 어떻게라도 살아보려 했을텐데 말이요.]

며느리는 아까운 젊을 썩히며 홀로 살아갈 일이 까막득하여 이런 상태를 벗어나 볼 속셈으로 꾀를 생각하였어요. 그것이 뭐였내면, 대낮에 꾀를 할라당 벗고(알몸이 되어) 대청마루에 벌렁 누워서 악을 쓰는 겁니다

"동네사람들! 다 들어보시오. 저의 시아버지가 젊은 미너리의 몸을 탐내어 겁탈을 할려고 합니다. 누가 와서 저를 좀 구해주세요. 빨리요."

집 안채에서 갑자기 며느리의 다급한 소리가 들리자 시아버지가 나가보니 마루에 며느리가 알몸으로 있거든. 차마 쳐다 볼 수가 없어서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체 멀리서 헛기침만 해대고 있었어요. 이웃의 마을사람들이 뭔 일인고 하여 담 너머로 하나둘씩 모여들어 웅성대고 하니, 시아버지는 챙피하고 당황스러워 며느리에게 "아가야! 제발 동네사람들 그만 우세시키고 얼른 옷이나 입어라. 부탁이다" 하며 통사정을 하자 겨우 옷을 주워 입드래요.며느리가 소리소리를 질러댄 내용이 삽시간에 소문으로 퍼져 동네사람들은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가고 드디어 관아에 원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원님은 만에 하나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상피붙었다면 관할하는 주민들의 풍속교화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고 즉시 두 사람을 잡아다가 대질하며 문초를 하였습니다.

원님이 먼저 시아버지께 " 영감! 당신 혹시 나쁜 마음을 먹고 며느리 몸을 건드리지 않았소" 하며 문초하니, 시아버지는 가슴을 턱턱 치며 "원 세상에 동방예의지국에서 어찌 그런 일이 어떻게 있겠소이까? 맹세코 아니라는 것을 헤아려 주십시오" 하고 답을 하는 거여.

이번에는 며느리에게 사실을 물으니 "그렇습니다. 시아버지가 저를 만지고 끌어안고 하였습니다. 무서운 벌을 내려주십시오" 하며 한술 더 뜨는 거야.

두 사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데 분명 한사람이 거짓을 말하고 있음은 분명하나 쉽게 가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남녀관계라 어떻게 딱 집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아요. 원님은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어요. 일단 두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밤낮으로 해결방법을 궁리하였으나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아 하루 저녁에는 식구들과 저녁밥을 먹으면서 이러저러한 일이 생겼는데 좋은 판결방안이 없겠느냐고 도움을 청했어요. 이 마을 들은 며느리는 분명히 자기가 처녀시절 한때 사모했던 그 양반이거든. 차마 즉석에서는 말을 못하고 다음날 시아버지를 살짝 뵙자고 하여 처녀시절 그 사건을 말씀드리고 그 증거로 어깨를 살짝 걷고는 흉터까지 보여드렸던 것입니다. 흉터에 의해서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도 그만한 자체력을 보여주던 양반이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보여준 것 아니 것어요.

원님은 그 며느리가 거짓을 행함을 짐작하고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필시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여겨 며느리만 따로 불러들여 크게 문초를 하였어

원님은 위엄있는 품모를 하고는 " 네 이년! 바른대로 아뢰도록 하여라.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게 되면 목숨이 온전치 못할 것이야. 어떻게 감히 시아버지를 강상(鋼常)의 죄에 끌어들일 수 있느냐? 어서 똑바로 말해보아라" 호령호령을 해댔어요.

머뭇머뭇 거리며 입을 열지 않자 즉시 곤장 몇 대를 치니 며느리는 울먹이며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꾸며댄 일입니다. 무고한 저의 시아버지에게 죄를 엎어 씌웠습니다. 사실 저를 혼인 일년도 못되어 저의 신랑이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음양의 이치를 알게 되어버린 제가 한평생을 청상을 지낼일이 깜깜하여 시아버지에게 치명적인 누명을 엎어씌우면 시아버지께서 동네사람 챙피하여 저를 먼 곳으로 내쫓아 버릴 것으로 생각하여 일을 벌였던 것입니다. 저의 어리석고 짧은 소견머리로 저지른 잘못은 달게 받겠습니다. 어떠한 벌이라도 내려주십시오. 흐흐흐---" 흐느끼며 실토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여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원님은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앉혀놓고 시아버지에게는 마음고생한 것을 위로하였고 며느리에게는 호된 질책과 죄값으로 곤장 스무대를 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한번 혼례를 치르고 나면 죽으나 사나 시댁의 귀신이 되도록 한 고부재가금지제도 때문인데, 좋지 못한 관습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한과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고있느냐며 시아버지에게 며느리가 새로운 혼처를 찾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시아버지에게 며느리가 새로운 혼처를 찾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시아버지도 며느리의 장래를 위해 그리하겠다고 했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청상과부들이 다시 혼인하는 것을 큰 허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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