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누에가 생겨난 유래

옛날에 어느 고을에 본남핀(본남편)이 마느래를 얻어가지고 살고 있었는디 어찌 된 일인지 맨날 마느래를 구박하고 때리고 못살게 하였습니다. 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담시 그런 것 보니께 아마도 자기 깜냥에는 뭣이 안맞았든가 안그러면 속궁합이 안맞었든가 했겠지요. 일년이년 티격태격하다가 더 미워졌는가 어쩠는가 각시한테 집을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미런헌 인간이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제 저는 쥐뿔도 없으면서 지가 뭐 대단한 사람인디끼 그 착하고 이쁜 마느래를 내 보낼려고 헌것이지요. 마느래 입장에서 보면 나가라고 헌께 못나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잘나지도 못한 주제에 손찌검이나 하고 맨날 구박만 하는데 무슨 놈의 정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특별히 많은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니고 뭐하나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마느래는 내가 당신이 나가라면 못나갈 줄 알아요. 사실 나도 그동안 사는 것이 지긋지긋 했어요. 지금 당장 나가면 나는 훨훨 나는 기분일 것이오. 그렇지만 이것 한가지는 분명히 기억하시오. 당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것이오. 모르긴 몰라도 저같은 마누라는 꿈도 못 꿀 것이고 홀애비 신세에 세끼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을 것이오.”하며 그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 남자는 몰락한 양반이었는지 어린 남자종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 종과 더불어 남아 있는 밥을 끓여먹으며 한 대여섯달은 그럭저럭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원래 변변치 않은데다 열심히 살아볼려는 의지도 부족하여 있는 것 다 털어 먹고 나니 뭐 묵을(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그래서) 각시 말마따나 알거지가 되어가지고 목에 풀칠을 위해 하는 수없이 차대기(자루) 하나를 준비하여 종놈을 대동하고는 이집저집 동냥을 하러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집을 쬦겨나간 그 마느래는 어떻게 서방복이 있었는지 남의 집에 기식하며 두어달 가량 이 마을 저 마을 떠도는데, 마침 천석꾼 부잣집에서 부잣집 마나님이 젊은 나이에 죽고 부자영감이 홀아비가 되어 사는 집이 있었습니다. 기식하는 집의 부인이 보니까 아직 젊고 용모도 그리 빠지지 않아 그 영감집의 후처로 들어가면 괜찮겠다 싶어 넌지시 운을 떼었습니다. 처음에는 펄쩍 뛰었으나 계속되는 권유에 다소 기세가 꺾이고 젊은 여인이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동한 부잣집 영감의 끈덕진 공세에 밀려 결국 그 집의 안방마님으로 들어앉게 된 것이지요.

그 남자가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 드나들면서 동냥을 얻으러 다니는데. 백호도 넘는 큰 마을에 도착하여 그 동네의 제일 부잣집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인자 양반의 체면은 있어서 종놈과 같이 다니기는 하여도 자기는 차대기나 들고 다닐 따름이지 남의 대문 안에 들어가는 일은 꼭 종놈한테 시켰습니다. 종놈한테 동냥을 얻어오라고 시켜놓고는 대문 밖에서 대문 틈으로 삐끔히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종놈이 큰소리로 계십니까. 동냥 한 그릇만 적선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외치고 나니, 안방문이 삐그덕 열리면서 어디서 많이 본듯한 사람인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쫓아내었던 마누라가 딱 들어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누래도 안방에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문밖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틀림없이 전 남편인 거라. 두 사람은 눈길이 마주치면서 말은 건네지 않았어도 서로 상대방의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속으로 저 여편네가 어떻게 잘 풀려서 귀부인이 되었구나.’ 생각하였고, 마느래도 그야 그렇지. 저 인간이 조강지처를 버리더니 쫄딱 망하고 알거지가 되었구만.’ 속구망(속마음)만 먹었습니다.

남자는 그래도 한때는 살을 맞대고 살았던 마누라라 너무 반가와 말이라도 한번 건네 보고 자와서(싶어서) 집안으로 불쑥 들어서니까, 마느래는 순간 분하고 미운 생각이 치밀어 올라와 얼른 방문을 닫아버리고는 식모아이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분례(糞禮)! 저기 밖에 어린애하고 서있는 거지양반 있지. 그 양반에게 광 한 번 뒤져 보아 참깨 있으면 1됫박만 퍼다 주어라.” 시키니 분례는 어안이 벙벙하여 우리 주인마님 정신이 어떻게 되신 것 아닐까? 그 귀한 참깨를 1되씩이나 갖다 주라니.”하며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표정이었습니다. 당시 동냥은 잘해야 보리쌀 한 접시이고 잘사는 집에서는 쌀 한 접시 주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그럴만도 하였습니다.

깨를 주라는 말을 들은 그 남자는 순간 우리 마느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볼라치면 여기서 시간을 끄는 수밖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퍼득 떠올린 꾀가 밑이터진 차두(자루)에 동냥을 받아 깨가 땅바닥 위로 쏟아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후 식모애가 깨 한 되를 바가지에 들고 다가오니 얼른 헌 자루의 주둥이를 벌려서 받자마다 땅바닥에 깨가 주르륵 옴팍 쏟아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내가 왜 차두를 잘못대어 이 아까운 깨를 쏟아버렸을까. 이거 큰일났네.’하며 한 톨이라도 남김없이 죄다 주워담아야지. 안되지 안되고 말고혼자 뇌까리며 열심히 주저앉아 일삼아서 깨를 한 톨씩 한 톨씩 주워담는 것이었습니다. 종아이 하고 둘이 쪼그리고 앉아서 줍는다고 해도 어디 깨알이 한두 톨이 이것어요. 그 남자는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싸목싸목(쉬엄쉬엄) 줍고 있으니깐 어느덧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한 밤이 다가왔습니다.

방문 틈으로 내다보니 한나절 내내 깨를 줍는 꼴이 안되었다 싶어 부인은 옷매무시를 다듬고 덤덤한 마음으로 마당 박으로 나오더니 여보시오. 나 없어지면 절로 잘 먹고 잘 산다더니 왜 그리 거지가 되었소. 내가 집을 나오면 남의집 식모노릇이나 할 줄 아셨지만, 보다시피 부잣집 안방마님이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소.” 약을 올리듯 자랑을 늘어놓으며 기를 팍팍 죽여놓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이제 덜컥 무담시(괜히) 착한 마누라를 내쫓았다는 후회심과 꾀죄죄한 행색에 남의 문전이나 기웃거리며 빌어먹는 자신의 신세가 더없이 처량하게 느껴져 겨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죽을죄를 지었소. 내가 그만 못된 생각을 하여 당신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고 그 죄값으로 내가 이 고통을 당하고 있소. 지금이라도 내 잘못을 용서해 준다면 응어리진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보겠소.”하며 흐느끼다가 마누라와 자신이 처한 입장이 너무도 달라 서로 가까이 할 수 없을 것을 깨닫고는 격한 감정에 그만 까무라쳐 죽고 말았습니다.

그 남자의 혼이 염라대왕 앞으로 불려가서 너는 어떻게 죽어서 여기에 왔느냐고 하니깐 이만저만해서 본처를 학대하다 거지가 되었다가 결국 죽는 몸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너무 본처에게 못할 일을 시켰으니 누에로 변하여 항상 가까이 있으면서 못다 준 정을 주면서 살고싶다며 누에로 환생시켜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염라대왕은 너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불구덩이 던져 넣어서 평생 고통 속에 지내도록 해야함이 옳을 것이나, 네가 한번도 인간적인 정을 너의 본처에 주지 못하였다고 하니 누에로 변하여 그동안 못주었던 정을 듬뿍주면서 가까이 있도록 하라며 그렇게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못된 남편이 변하여 환생한 것이 누에인데, 누에는 평생 여자들의 손에 크면서 다 자라서는 고치가 되어 여자들의 손에의해 배로 짜여져 고운 옷감이 되는 것입니다. 누에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며 여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오랜 옛날 사람으로 있을 때, 부인에게 진 빚을 갚으려고 무지 애를 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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