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김덕령과 누이의 재주겨루기

옛날에 만고충신 김덕령하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을 정도로 힘세고 용맹스러운 장군이었습니다. 키는 별로 안 컸어도 힘이 무지무지 장사였습니다. 거 집집마다 보리쌀도 갈고 콩도 갈고 하는 확독이 있는데 그 확독의 몸뚱이를 듬성듬성 시끼줄로 동여매고는 거기다 고리를 만들어 가지고 고리 속에 말뚝을 끼워넣고는 팔을 올렸다 내렸다하니 그 무거운 확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정도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흔히들 김덕령이만 똑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양반의 누이는 훨씬 더 똑똑하였습니다. 힘도 보통이 아니고 앞날을 내다보고 상황을 판단하는 지혜가 남달랐었습니다.

한곳에 두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조금 못한 사람이 치이는 것 아닙니까. 기세에 눌려서 제대로 커나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이래서 덕령의 누이는 재주로 한다치면 자기가 올라서야 허것지만, 여자는 한번 출가외인이 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니까 남자인 자기 동생이 출세를 해야 집안에 영광이 찾아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인자 자기 동생을 높은 사람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누이는 어느 날 저녁 동생을 불러 이러한 제의를 하였습니다.

! 덕령아 우리 재주시합 한 번 하자꾸나. 이건 그냥 장난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너는 말을 타고 집을 나서서 무등산을 한바퀴 빙 돌아서 오고 나는 그사이에 도포 1벌을 짓겠다. 이 시합에서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죽어주는 거다. 우리 오누이는 재주가 서로 엇비슷하게 뛰어나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니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울 기회를 한사람에게 확실히 밀어주기 위해서 시합을 하자는 거지 추호도 별다른 뜻은 없다.”

누이의 무거운 목소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덕령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언젠가는 이 날이 올 것으로 짐작했지만, 그 날이 너무도 빨리 온 것에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봤자 누이를 제대로 당해낼 재주가 없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덕령은 이제 조그마한 뜻도 펴지를 못해보고 죽는구나. 누나도 야박하시지. 어린 동생을 꼭 죽게 만들어야만 하나하면서 착잡한 심정에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한번 죽을 목숨 최선을 다해 하는데까지 해보기로 결심하고는 마굿간에서 말을 꺼내어 왔습니다.

이 양반은 자기의 용마에게 용마야! 오늘은 너의 주인인 나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날이다. ‘죽으려고 한다면 살고 살려고 한다면 죽는다는 전쟁터에서의 구호처럼 너는 죽을 각오로 뛰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누이는 방안에 옷감과 바느질도구를 준비해놓고 동생은 대문 앞에 말을 세워두고 서로 시작이라는 구두신호의 외침에 따라 피를 말리는 시합을 벌였습니다. 누이는 애당초 동생에게 져줄 것을 생각하고 벌인 시합이었지만 막상 여기서 지면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그렇게 착잡할 수가 없었습니다. 덕령은 힘껏 채직을 내려치며 말을 달렸고 누이는 누이대로 바삐 옷감을 자로 재고 가위를 움직여 도포를 지어 나갔습니다. 누이는 어찌나 손이 빠르든지 덕령이 집에 도착하려면 십리를 더 와야할 곳에 있을 때 이미 옷을 다 지어놓았습니다.

이대로 있는다 치면 내가 살고 내 동생이 죽을 텐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내가 죽을 수는 없지. 아니야 우리 집 대들보인 덕령이를 살려야 우리 가문이 크게 빛이 날 거야.”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며 안전부절 못하고 있는데, 동구밖 가까이에서 말방울 소리가 울리며 동생이 도착하였습니다. 순간 누이는 눈을 지긋이 감고는 도포에 달린 옷고름을 힘껏 잡아 당겼습니다. 덕령은 사력을 다해 집에 도착하여 마당에 말을 세우고는 황급히 안방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누이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 너 참으로 고생했구나. 나는 아직 옷고름을 못 달았는데. 이 시합은 네가 이겼구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는 그 날 저녁 노끈으로 목을 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이 사실을 알게된 덕령은 통곡을 하면서 혹시나 하여 도포자락을 자세히 살펴보니 실밥이 묻어 있었습니다. 이미 옷을 다 지은 후 일부러 옷고름을 뜯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덕령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누이의 숭고하고도 큰 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고 고이 장사를 지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누이의 뜻을 받들어 밤낮없이 연마하여 가문과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였습니다. 다 큰 인물이 날라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과 걸리적거리는 것을 피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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