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딸은 도둑년이다

옛날에 어떤 양반이 있었는데 즈그(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모실라고 좋은 땅을 장만하였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고을에서 영하다는 풍수지관을 불러다가 묏자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지관은 고을에서는 깨나 알아주는 풍수여서 명성이 자자할 뿐 아니라 초빙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살아생전 호강한번 못시켜드린 부모님이지만 늦게나마 좋은 음택(陰宅)을 마련하여 편히 계시도록 하려는데 금전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좌향을 잡은 후 5명의 삯군을 사서 부모님의 묏자리를 큼지막하게 팠는데, 친정집에서 친정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장(移裝)할 묏자리를 잡는다는 소식을 들은 이 집의 큰딸이 친정집의 산에까지 왔었습니다. 묘지의 토광(土壙)을 다 파놓으니깐 마치 명망이 있는 제후의 무덤처럼 그럴듯하게 보이느 것이었습니다.

작업을 마치자 주인양반과 지관이 무덤자리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주인이 참으로 좋은 자리 같습니다. 여러 양반들이 고생하여 땅을 파놓으니 모양새가 납니다.” 하니, 지관이 예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곳이 앞으로도 물만 나지 않는다면 육법정승(육조판서의 그릇된 표현)이 날만한 자리입니다.” 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딸은 이곳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임을 알아차리고, 이 묘자리를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시댁 것으로 만들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는 식구들과 함께 친정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일의 도모를 위해 식구들이 적게 자는 친정집 아랫방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말이 잠을 자는 것이지 실지로는 잠을 자지 않고 식구들이 모두 잠드는 심야를 기다려 몰래 물동이를 들고 산으로 향하였어요. 여자 혼자 밤길을 나선다는 두려움도 잊은 채 산에 도착하여 인은 계곡에서 부지런히 동이에 물을 담아다가 무덤의 토광 안에 퍼부었습니다. 한참을 퍼 날라 토광 안에 물이 넘실거리게 되자 딸은 이제는 됐겠지.’ 하며 집으로 돌아와 슬그머니 잠자리에 들어갔고, 이튿날이 되어 온가족들이 음식준비 등 이장할 모든 채비를 갖추어 미리 손질해 놓은 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가? 어제까지 축축한 기운이 하나도 없이 그렇게 좋았던 묘자리 안에 물이 나 있었습니다. 지관의 말처럼 물만 안 나면 최고의 명당자리인데 물 때문에 못쓰는 무덤이 되어버린 겁니다.

친정식구들은 낙심천만하여 이장작업을 포기하고 일단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얌체같은 딸은 속으로 쾌제를 부르며 한 달도 되기 전에 자기 시압씨(시아버지) 시엄씨(시어머니)의 유골을 파와서 친정집 묫자리에다 이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가 부모를 위해 그렇게 힘을 들여 마련한 묘지를 욕심 많은 딸이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몰래 빼앗아간 것이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딸의 집에서는 맨날 우환만 뜰끓었는데, 느닷없이 사위가 낙상사고를 입지 않나 소도둑을 맞지 않나 크고 작은 사고가 줄을 이었습니다. 여러 날의 큰 고민 끝에 점을 쳐보니 시부모의 묘를 잘못 써서 그런다고 하였습니다. 뒤늦게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딸은 즉시 시부모의 묘를 원래자리로 옮기고 자신의 잘못을 친정아버지께 고백하고 사죄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친정아버지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딸에게 ()가 너의 시댁을 위해서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좋다. 그런나 사람의 일은 억지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고 순리가 있는 법이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욕심은 버리고 우선 남을 위해 많은 덕을 쌓아라.”고 젊쟎게 타일렀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어쨌든 없어질 뻔한 명당을 찾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며 다시 좋은 날을 택하여 부모님의 이장을 하였습니다. 이장 이후 친정집에는 다시 경사스러운 일이 많아지고 살림도 날로 불어나 가문이 융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친정집의 복까지 억지로 빼앗아가려는 딸들의 행동방식 때문에 딸들은 모두 도둑년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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