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지집(계집)은 항시 조심해라

옛날에 어떤 영감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영감이 풍수지리에 대하여 웬만큼은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략 자기가 어느 나이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며 몇 월 며칠 경에나 운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서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영감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남아있는 부인과 자식이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겪지 않고 편안히 살아나갈 수 있도록 방책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러고는 아무 날 저녁 영감은 부인과 아들을 불러놓고는 내말 좀 들어들어 보오. 나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데, 부탁이 하나 있소. 내가 죽으면 나를 상여로 떠메어다가 땅속에 묻지 말고 나를 관에 넣어 우리 집 우물에다 머리 부분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거꾸로 빠뜨려 주시오. 우리집터가 소외양간의 형국인데 내가 소의 역할을 해야겠소. 그러면 우리 집이 틀림없이 크게 흥할 것이오.”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가족들은 어떻게 감히 집안의 가장을 땅에 묻지 않고 우물 속에 수장(水葬)시킬 수 있느냐며 만류하였으나, 다 우리 집안 좋자고 하는 일이며 절대 불경(不敬) 또는 불효가 아니니 꼭 그렇게 하도록 몇 번씩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조사자 : 그러면 왜 하필 머리가 밑으로 가져 넣어달라고 하였습니까? 제보자: . 영감의 집이 소 외양간 형국이라고 했지 않아. 그런데 소의 습성은 일어설 때는 앞다리가 먼저 일어서고 앉을 때는 뒷다리가 먼저 앉게 됩니다. 따라서 머리가 아래에 있어야 앞다리() 부분이 먼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지.]

옆의 가족들은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하마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러한 생전의 부탁이 있은 후 5개월 남짓 되는 날 그 영감은 잠자리에 들어가서는 마치 잠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고이(곱게) 이승을 하직하였습니다. 옆에 사람들에게 별다른 고생을 시키지 않고 죽는 것도 큰 복이라는 말들을 하며 호상(好喪)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렇게 상을 당하자 아들은 아버지의 부탁대로 아버지의 시신을 관에 넣어 우물 속에 집어넣고는 출상당일에는 굵은 생솔나무를 안에 넣은 가짜 관을 상여 위에 얹어서 산소로 가져가 묻었습니다. 말하자면 건생이(시신을 상여에 얹어서 싣고 가지 않는 빈 상여)로 치상을 한 것이지요.

이렇게 장례를 치르고 나서 그 영감의 할멈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면 당대발복(當代發福)으로 이 집안이 흥성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할멈은 한 달도 못되어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며 친한 이웃할머니에게 이만저만해서 우리 영감은 우리 집 우물 속에 들어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주위에 발설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고 그 노파 역시 듣는 사람에게 당신 혼자만 알고 있으라면서 그 이야기를 주위에 전파시킨 결과 단 며칠도 안 되어서 이 사실이 온 동네방네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조용히 넘어갔을 일이 온 동네방네에 다 퍼지고 세상에 자기 아버지를 우물에 빠뜨린 불효막심한 아들이 없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온갖 공론이 무성하여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우물 속에 있는

아버지의 관을 꺼내어 다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참았으면 될 일을 입이 가벼워서 못 참은 탓에 복을 털어내고 집안 망신까지 가져온 것이지요. 이러한 꼴을 보고 나서 동네사람들은 '이핀네(여편네)들은 넘()이다.', '지집이 요망하면 도장(곳간)안에 범이 든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고들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소가 이 샘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했다하면 이 집이 크게 흥하여 부자가 되었을 텐데, 자발없는(입이 가벼운) 노파 때문에 큰 복을 놓치고만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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