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비명횡사한 유생(儒生)

옛날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어느 양반댁이 있었는데, 어떤 집이든 하나의 근심은 있다고 이 집도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뭐냐면 이 집의 아들이 장개간지 3년이 지났건만 도무지 손주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며느리가 문제가 있는 것 이 아니라, 아들에게 애기를 못낳는 증상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체높은 부잣집에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타성받이 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입양이라는 것도 없었고 양자라도 데려오려고 해도 마땅히 데려올 데가 없으니 매우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이리저리 궁리해도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아 결국 외간남자를 끌어들여 와서 자기 며느리와 동침 시켜 후손을 보려고 계책을 짠 것이었습니다.

이 양반 댁에서는 며느리의 상대남자가 될 사람을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 정해놓고는 좋은 날(吉日)을 택해 그 사람을 잡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날짜는 과거 시험이 시행되는 바로 전날이었고, 취택 대상은 지방에서 올라온 신체강건하고 용모가 준수한 젊은 유생이었습니다. 양반집에서는 건장한 하인 네 명을 밤이 이슥할 무렵 한양의 중심거리로 내보내 마땅한 대상자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얼굴부터 부대를 씌워서 데려오도록 시켰습니다. 하인들은 골목에서 서성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인적이 뜸한 거리를 바삐 걸어가는 한 젊은 유생을 발견하고는 부대쌈을 해갖고 왔습니다. 그 남자는 과거를 보러 충청도에서 올라 온 23살 먹은 최생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부잣집 사랑으로 끌려들어온 최생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두려움에 떨고만 있는데, 이윽고 양반댁 부부가 들어오더니 자신을 붙들고 오게 된 까닭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실은 말이오. 우리 아들을 혼인시킨지 3년이 다되도록 손주 소식이 없어 자상히(자세히) 알아보니, 우리 아들에게 무슨 고장이 붙어 얘기가 없다고 하오. 젊은이께서 좋은 일 하는 셈치고 오늘저녁 하루만 우리 며느리하고 합궁 좀 해주시오. 그러면 우리 젊은이에게 서운치 않게 사례금도 들려주고 무사히 돌려보내 줄테니 걱정일랑은 조금치도 하지 말고 그렇게 좀 부탁하오.”

젊은이는 양반 부부의 간곡하고도 정중한 부탁에 적이 안심이 되어 그리 하겠다고 말하고는, 인자 목욕재계를 마치고 곱게 치장하고 기다리고 있는 며느리방으로 안내되었제. 며느리방에는 진수성찬으로 음식이 큰상에 가득 차려져 있고 며느리는 그 남자와 둘이 앉아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먹고는 이내 상을 물렸어. 드디어 이들 남녀는 마치 부부지간처럼 운우지정을 나눈 후 그 남자는 밀려오는 피곤을 주체하지 못하고는 어느새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양반부부의 철통같은 약속은 다 감언이설이었고 이들은 이미 하인들에게 새벽녘 먼동이 터오르기 전에 이 남자를 다시 부대쌈을 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한강물 속에 빠뜨리도록 시켜놓았던 거야. 말하자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후환 때문에 이 남자를 1회용으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어떻게 운이 좋았던지 며느리는 태기가 있었고 마침내 잘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나서 며느리의 꿈자리에 자꾸 귀신이 나타나는데, 바로 어느 날 갑자기 비명에 죽음을 당한 그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며느리는 자다가도 헛것이 보여 잠꼬대를 해대고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시부모들도 자연히 알게 되었고 시부모들은 혹시라도 이 사실이 다른 집에 알려지면 큰 낭패라고 생각하고는 대비책을 세웠습니다.

그 방책이라는 것은 필시 며느리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는데, 시부모들은 며느리를 불러다가 네 육신에 귀신이 붙었으니 너 때문에 온 집안이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너 하나 죽어줌으로써 온 집안이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칼을 입에 물고 그 자리에서 죽도록 다그쳤습니다. 며느리는 갖은 고비를 넘기고 대가 끊어져갈 집안에 아들까지 낳아 주었는데도 위로하는 말 한마디 없다면서, 그렇게도 제가 보기 싫으면 당장 죽어 없어지겠다고 울부짖었지만 차마 칼을 입에 물고 죽지는 못하고 그 날 저녁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두 명이나 되는 아까운 목숨을 억지로 죽게 하고 나더니 이 양반댁도 가세가 차츰 기울기 시작하여 형편없는 집안으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그 남자를 죽이지 않았으면 이런 일 없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었다면 비명에 죽은 남자를 위해 천도제(薦度祭)라도 지내주고 귀신을 정성껏 달래 주었드라면 며느리는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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