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착각은 자유지만 그래도 횡재

옛날에 어느 마을에 어떤 여자가 부잣집 며느리로 와서 살다가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마저도 갑자기 병을 얻어 급사하게 되자 엄청난 전답과 가옥을 혼자 건사하면서 지내는데 아무래도 워낙 덩치가 커서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편, 저 건너편에 있는 마을에는 황부자라는 부유한 홀아비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이웃마을에 젊은 데다가 재산까지 넉넉한 과수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침을 삼키며 욕심을 부렸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과수댁과 합치면 새부인을 얻는데다 지금보다 두 배가 넘는 재산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횡재도 그런 횡재가 아니겠어요. 황부자는 과수댁을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워서 하나씩 착착 진행하여 나가면서 자기마을을 비롯 인근의 여러 동리에 다니 며 자기가 이웃마을의 과수댁을 좋아하여 몇월 며칠날 그 과수댁을 보쌈하여 데려 오기로 했노라고 소문을 퍼뜨리면서 과수댁을 자기집에 데려오는 사실을 기정사실화 해버렸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웃마을 과수댁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치듯 황당무계하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쩔 것이요. 이미 소문이 나 있어서 보쌈은 피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보쌈은 피할 수가 없었지만 과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위기국면을 헤쳐 나갈 궁리하기 시작하여 이러저러한 갖가지 묘수를 짜내고 있는데, 어느 날 오후 체장사가 골목에서 체 사시오. 체 사시오. 헌 체도 고칩니다.” 외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순간 머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과수댁은 체장사를 집으로 불러들인 뒤, 그 동안 망가져 못쓰고 있던 체를 죄다 꺼내어 고치도록 하였습니다. 모두 다섯 개나 되는 체를 고치고 나니 날이 벌써 어두워져 체장수는 급히 짐을 챙겨 길을 떠나려 하자 과수댁은 날도 어두운데 이제서야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느냐며 여기서 하룻밤 유숙하고 가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체장수 역시 이 집이 과수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은근히 접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장사꾼의 체면상 젊잖을 빼고 있었을 따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불감청(不敬請)이나 고소 원(固所願)'의 심정이었지요. 장사꾼은 과수댁이 자신을 사모하여 끌어당기는 것으로 여기면서 속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고 쾌재를 불렀고, 과수댁은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려서 반주와 함께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지자 고급스런 비단요 위에 원앙베게와 비단이불을 펴주고는 자기는 건너방에서 자겠다고 훌쩍 나와버렸습니다.

아뿔사! 이게 무슨 낭패입니까? 달콤한 하룻밤을 꿈꾸던 체장수의 희망이 단번에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었지요. 기분이 좋다가 말아버린 체장수는 한숨을 내쉬며 끙끙 앓다가 속옷만 입고 드디어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웃마을 부잣집의 보쌈꾼들은 이날 저녁 심야에 과수댁으로 보쌈을 허러 와서 담을 넘어서 안방으로 들이닥쳐 얼굴 확인도 않은 채 다짜고짜 이불 속에서 자는 체장수를 과수댁으로만 알고 포대 안에 집어넣고는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들은 성공적인 과수댁보쌈으로 황부자집에서 받을 사례금으로 기분이 들떠 있었습니다. 황부자는 돈 많은 과수댁을 얻어 더 큰 부자가 될 욕심에 빠져 집에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목구멍에 침을 삼켜가면서 이제일까 저제일까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골목이 소란스러우며 일행이 마당 앞에 당도하였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에 직면하였던 것입니다. 부대자루를 개봉하니 왠 늙수구레한 중년남자가 보이지 않겠어요? 이 광경을 본 황부자는 실망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황당하여 얼른 자루에 도로 넣은 채 뒷방으로 데려가 이불을 펴주며 그 안에 들어가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황노인은 보쌈하여 데려온 남자의 처리 방법이 골치였습니다. 당장에 의관을 준비 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억지로 쫓아낸다 해도 만일 관가에 고발해 버리면 그 화는 자신에게 미칠 것이 뻔하였으니까. 황노인은 이 남자의 처리를 위해 여러 가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과수로 지내고 있는 자기 제수씨에게 이 남자를 소개해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속셈을 가진 황노인은 제수집으로 가서 짐짓 시치미를 뚝 떼고는 제수씨 계시요. 저 제수씨 시숙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차여차해서 이웃마을에 사는 과수댁 한 분을 데리고 왔는데, 옷도 없고 속옷인 상태로 이불만 둘러쓰고 말 한마디도 않은 채 웅크리고만 있단 말입니다. 제수씨가 어떻게 좀 달래어 서 마음을 풀도록 해주었으면 좋것소. 부탁 좀 할께요.”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제수는 그야 뭐 여부가 있것습니까. 한 분밖에 없는 서방님 부탁인데 맨발 벗고라도 나서야지요. 서방님도 홀로 계시다 부인이 생겨서 좋고 저도 성님(형님-여기서는 손위의 동서를 가르킴)생기게 될 판이니 일석이조 아닙니까?” 하며 대환영이었습니다. 황노인은 자기 제수를 뒷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뒷방에 들어간 제수는 이불속에 있는 여인(사실은 남자)을 부르며 성님! 성님! 내 말 한번 들어보쑈, 다 사람은 사주팔자를 떨쳐버리고는 못 산다. . 두 번 장개가고 두 번 시집가는 것도 다 인력(人力)으로는 못하는 운명이 아니것소.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분한 마음 다 떨쳐버리고 새출발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우리 사이좋게 한번 살아봅시다. 실은 나도 팔자가 세서 혼자 살고 있소하며 다독거렸습니다.

갑자기 모르는 여인이 나타나 사정사정 해대는데, 이불 속의 남자는 금방 남자임이 탄로가 날까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속으로 끙끙대고만 있었습니다. 그 제수가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여도 아무 반응이 없자 놀려주기 위하여 이불 속에 벙어리 양반 들어 있구만, 원 세상에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법자(벙어리의 저라도 사투리)를 다 데려왔을까.”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제수는 여러 가지 수를 써 보아도 효과를 거둘 수가 없자 마지막 수단을 생각해냈는데, 사람은 살갛끼리 부딪혀야만 친밀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말마따나 이불 속에 있는 양반도 간짓밥(간지럼)을 먹이면 분명히 말문이 터질 것으로 확신한 거야.

제수는 이불 속에 손을 넣어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간지럼을 태웠는데, 별로 기색이 없자 드디어 많이 간지러운 사타구니로 손이 갔나 봅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사타구니로 손이 쑥 들어갔는데 다리사이에서 뭔가 물컹하면서도 길다란 물체가 꽉 잡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수는 직감적으로 여인이 아님을 깨닫고 당혹스러워하며 손을 빼내려 하는데, 이번에는 이불 속에 들어있는 사람이 제수되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뜸 이불 속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이보시오. 나는 과수댁이 아니라 잘못 끌려온 남자 홀아비요. 댁에서 나의 중요한 곳까지 만져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숨기고 부끄러워 할 것이 있것소, 일이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같이 살아버립시다.” 해서 얼떨결에 새로운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한 것입니다.

제수는 자신이 시숙의 난처한 문제를 해결해 주러 이끌려 온 것을 깨닫지 못하고 시숙이 자신을 시집보내 줄려고 이러한 계략을 세운 것으로 착각하고 시숙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체장수는 과수댁이 자신을 사모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한 번의 낭패를 보았으나, 황노인의 묘수에 감쪽같이 속은 제수의 착각으로 궁지를 모면하고 떠돌이 홀아비에서 듬직한 마누라를 거느린 어엿한 가장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엉뚱한 속셈은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고 때로는 저절로 복이 굴러오는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top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