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마음씨 좋은 두 동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이야기인데, 아들 성제(형제, 두 명을 지칭)를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들을 키워내어 출가시켜 큰아들은 자기 집에 같이 살고 작은아들은 큰집 옆의 오두막집으로 제금(딴살림)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아무래도 부모제사를 받들어야 하고 가문을 이어가야 하니까 살림을 많이 떼어줘서 생활이 어렵지 않았지만 작은 아들은 원래 부모유산 자체가 적은 데다 지손(支保) 이라 서마지기짜리 산골착(골짜기) 천수답 한 다랭이 (배미) 달랑 떼어주어 항시 살림을 못 펴고 매 끼니마다 밥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곤란하여 항시 어머니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느 해 가을이었는데 작은 며느리는 자기 집 마당이 좁아 큰집 마당에 수확한 나락()을 말리게 되었습니다. 큰집 마당에 펼쳐진 덕석의 한 부분에 자기 집의 나락 다섯 말을 널어놓고 시어머니께 가끔씩 저어서 말려 주시라고 부탁하고는 들에 일하러 나갔습니다. 낮 동안 시어머니가 벼를 말리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은 아들네가 안쓰러워 큰 아들네 나락을 슬쩍 두 소쿠리나 퍼서 작은 아들네 쪽에다 붓고는 당그래(고무래)로 휘저어서 테가 나지 않도록 해놓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작은 며느리가 와서 나락을 담으니 닷 말이 넘게 되자 며느리는 내가 분명 닷 말만 가지고 왔는데 이상하다. 나락이 마르면 조금이라도 줄어 드는 것이 이치인데하면서 남는 나락을 큰집 나락에다 합쳐 놓았습니다. 이튿날에도 똑같이 닷 말을 널어 이날도 시어머니가 큰 아들의 나락을 작은 아들네에게 옮겨 붓고 있는데, 마침 며느리가 시어머니 점심을 차려드리기 위해 대문 앞에 들어서다 이 광경을 목격해버렸어요.

[조사자: 참 황당할뻔 했네요. 제보자: 근디(그런데)이 큰며느리도 소자(효자). 아무리 고부간이라지만 며느리가 이 사실을 알면 곤란할 것 아니것어. 그래서 며느리는 대문간에 들어서려다가 다시 물러서서 한참 동안 밖에서 기다리다가 모른 체 하고 집에 들어왔어요]

석양이 되자 큰며느리는 작은 동서가 어떻게 나오는가 보자고 속구망(속마음)만 먹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 동서의 행동을 언뜻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동서는 꼭 자기가 가져온 만큼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손도 대지 않으니까, 이에 큰며느리는 적지 않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원 세상에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뜻밖의 재물에 욕심이 없을 턱이 없으련만, 너무 올곧은 사람이야하며 일만 죽어라 해도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는 작은 서방님네를 위해 내가 뭐라도 도움을 줘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작은 동서를 살짝 불러 자네! 내일 저녁에 말이야 막걸리 한되하고 자네가 잘 만드는 반찬 한 가지만 해 가지고 우리집으로 오소. 자네 시숙이 워낙 술을 좋아하니 제수씨가 술 한잔 대접한다면 크게 기뻐할 것일세.” 하니 작은 동서는 어떤 영문인지도 모르고 시킨대로만 하였습니다.

드디어 다음 날 저녁 작은 동서는 큰집에 가서 큰서방님! 제가 변변치 못하여 진즉 술 한잔 대접했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텁텁한 막걸리지만 한잔 따라 올리겠습니다.”하고 권하니

시숙은 별말씀을 다하시오. 네가 동생네 형편을 뻔히 다 아는데 어쩌겠소. 아무튼 참 귀한 술이니 잘 먹겠소하며 연거푸 잔을 비우더니 술기운이 많이 올라왔고, 이 기회만을 노리던 큰동서는 갑자기 장롱 속에서 논문서를 꺼내들고 여보! 우리는 이제 먹고 살만하게 되었으니, 저 아래 저수지 밑의 새암배미 논을 동서네 줍시다. 당신 제수씨 징허게 짠허요(불쌍하요). 없는 집에 시집와서 한번 살아 볼라고 하는 마음이 가상치 않허요하면서 그 논을 동서 집에 이전해 주자고 하였습니다.

이때 사실 큰아들은 술에 크게 취하여 마누라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무작정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도장을 찔러 줘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큰며느리는 남편에게 어제저녁 당신이 동생에게 논을 주었다며 그 논문서를 보여주니, 내가 언제 그랬냐면서도 이왕 일이 이렇게 되버린 이상 그리 하자고 하여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동생 집에 논을 주게되었습니다. 동생집도 새암배미 논이 살림밑천이 되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살림이 펴지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형제가 위아래 집에서 의좋게 살면서 어머니를 떠받들고 두 사람이 백 살에 이르도록 장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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