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유소저(柳小姐)의 환생

옛날 광주고을에 유소저(柳小姐: 소저는 아가씨라는 뜻의 한자어)라는 처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친어머니를 병환으로 잃고 아버지가 새로 계모를 맞이하여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재혼으로 처녀장가를 들게 되었으나 계모의 나이가 젊어 계모의 시샘과 강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관직에 있는 부친이 가정사는 별로 챙기지 않는 것을 기회로 계모엄마는 틈만 나면 전처소생인 유소저를 없애버릴 궁리만 하여 번번이 밥에 독약을 묻혀 주곤 하였으나 낌새를 알아차린 소저의 유모가 그 밥을 주지 않아 화를 면하였습니다. 한번은 유소저의 유모가 독성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이상한 밥을 개한테 주었는데, 그 개는 먹자마자 죽어버렸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비상(砒霜)처럼 무서운 극약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계모는 아무래도 유모가 중간역할을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유모를 내쫓아버렸습니다. 이후에 계모는 자신이 해다 주는 밥을 전처의 딸이 잘 먹지 않자 크게 걱정하는 척 얘야, 밥을 잘 먹어야지. 그렇게 게직게직 하며 통 먹지 않으면 어떡하니. 그렇게 입맛이 없으면 미음이라도 쑤어다 주렴.”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모는 정말로 쌀을 갈아서 미음을 끓여다 주었고 이때 계모는 몰래 독약을 타 넣고 새로 입맛을 찾으라고 쑤어주는 죽이라 덥썩 먹어대겠지 하며 속으로 고소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계모의 간교한 흉계를 이미 알고 있는 유소저는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데도 죽을 안 먹는다고 하면 자신이 계모의 흉계를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이 들통이 날까봐 죽을 그대로 둘 수는 없어서 웃옷의 가슴속에 가죽주머니를 몰래 매달아 먹는 척하며 죽을 부어 담아버렸습니다.

유소저는 짐짓 태연해 하며 새어머니. 새어머니께서 정성껏 쑤어 주신 미음죽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신경을 많이 안 쓰셔도 되는데 아무튼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계모는 속으로 꼴도 보기 싫은 년. 이년이 제대로 죽을 먹었으면 오늘저녁도 넘기지 못하겠지. 오늘만 지나면 눈엣가시처럼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지고 서방도 서방의 재산도 다 내차지가 될 거야. 아이 고소해. 아이 고소해. 이제는 모든 것이 내 세상이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일까? 곧 죽을 것으로 생각했던 전처 딸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너무도 멀쩡하였고, 한참 후에야 계모는 유소저의 지략이 자신보다 한 단계 앞서 있음을 깊이 깨달고 더 이상 얄팍한 간교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정공법(正攻法)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면서 적당한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전처의 딸이 방년 17세가 되어 이웃마을 사대부가의 도령과 혼사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계모는 몇 번의 독살시도를 실패하여 증오심이 가득 찬데다 지체높은 양반집 며느리로 들어가 거드름을 피우는 꼴은 더더욱 두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혼인 첫날밤 암살계획을 비밀리에 꾸몄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거짓 표정을 지으며 혼례식을 치러낸 계모는 은밀히 계획을 진행시켜 나아갔는데, 저녁 시간에는 일부러 일가친척을 붙잡아 밤늦도록 놀다가 가도록 하였습니다. 어두컴컴한 헛간 한켠에서는 몸종 덕순이'를 남장시켜 날이 퍼렇게 선 비수(北首: 단검)를 쥐어주고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거사 전에 이미 계모는 몸종에게 입힐 남자 옷을 준비해서 입혀보는 등 치밀한 준비까지 마쳤습니다.

축하하객들도 다 떠나고 계모부부는 신방에 들어간 새부부에게 좋은 꿈 많이 꾸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라는 인사말을 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였습니다. 이들이 잠자리에 들어간 후 자정을 넘긴 시간에 거사를 치르기로 계모와 몸종사이에 약속이 되어있었던 바, 드디어 거사의 시간이 다가오자 몸종 덕순이는 살금살금 헛간을 빠져 나와 신방 앞으로 향하였습니다. 가만히 방안의 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두 사람이 잠이 들지 않고 신랑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으나 신부는 부끄러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잠자코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덕순이는 숨을 멈춰 마음을 가다듬고는 용기를 내어서 신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 가 어떤 놈이 임자가 있는 유소저와 혼례를 올리는 거야? 이 처자는 이미 장래를 약조한 남자가 있으니 화를 입기 전에 즉시 이곳을 떠나시오.” 하며 굵은 남자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신랑은 난데없는 야밤 침입자의 손에 날이 퍼런 비수를 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멍하니 서있자, 득순이는 재차 뭐하는 거요. 즉시 떠나란 말이오소리를 쳤습니다. 혼비백산한 신랑은 이 자가 분명 신부의 샛서방임에 분명하다고 믿고는 어차피 성립되지 못할 혼례이니 내 목숨이나 살자는 생각에 속옷차림으로 그 집을 뛰쳐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한편, 신방에 있던 유소저는 터무니없는 모함과 모욕을 당하며 침입자 득순이의 십자칼에 가슴을 3번이 찔려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본 채에 있던 부모들은 한밤중에 이러한 큰 소동이 벌어진 것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서야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집터가 워낙 넓어 본채와 행랑채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던 데다가 워낙 사건이 번갯불(電光石火)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까마득히 몰랐던 것이지요. 아침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방안은 난장판이 된 채 신랑은 온데간데 없고 신부는 가슴에 칼을 꽂고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습니다. 소저의 아버지는 내 고운 딸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통곡하고 계모도 거짓으로 슬픈 척 하며 울었습니다. 한바탕 통곡이 지나간 후 계모는 저 불쌍한 것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었네. 어떤 몹쓸 사람이 그랬을까. 어서 저 칼이라도 빼내고 영혼이라도 달래줍시다하며, 칼을 빼내려고 칼의 손잡이를 잡자 갑자기 유소저의 시신이 악새(惡鳥)로 변하여 방안으로 날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이 악새가 계모 앞에서 '--' 세 번 울고 나니까 갑자기 계모가 쓰러져 죽고 말았고 한참 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찾아온 두 명의 이복동생들도 - - ' 소리에 모두 까무라쳐 죽었습니다.

이렇게 본마누라에게서 얻은 딸을 잃고 새 마누라와 그의 소생까지 잃은 바깥양반은 '세상이 나를 버렸으니 내가 더 이상 세상에 살아남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탄식하며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한 집안의 가장까지 죽고 나니 말로 이 집안은 가문이 없어지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은 형국이 되었습니다.

한편, 신혼 첫날밤 목숨박탈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그 신랑은 더욱 학문에 정진하여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팔도감사에 제수되어 고향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고을의 한 외딴집에 유소저의 유모를 하였던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마침 날이 저물어 이 팔도감사가 가까운 집에 들어간다고 들어간 것이 그 유모 집에 들어가게 되어 하룻저녁 유숙하게 되었어요. 노파가 방이 단방이어서 곤란하다고 하니 그 감사는 저희 어머니 같은 분이신데 어쩌겠느냐고 반문하며 괜찮다고 하여 겨우 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은 한밤중에 생겨났습니다. 두 양반들 모두 피곤하여 곤히 잠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느닷없이 안방문이 덜그럭거리며 밖에서 --~'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심야에 죽은 유소저의 혼령이 변하여 된 억새가 예전 유모집으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덜거덕 거리니 무슨 소리를 들은 노파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방문을 여는 순간 그 억새가 재빠르게 방안으로 날아들더니 갑자기 죽기 전의 이 소저 모습으로 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모 할머니와 팔도감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반가워하면서 그간의 정회(情懷)를 풀며 얘기꽃을 피웠고, 이야기 말미에는 입에 떠올리기조차 직한 신혼첫날의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의 시작에서 끝은 오로지 마음씨 악한 자신의 계모의 흉계에 의한 것임을 밝히면서 어쨌든 자신으로 인해 아무 영문도 모르는 서방님까지 피해를 입게 된 것을 미안해하였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샐 즈음이 가까워지니까 감사는 유소저에게 잠깐이라도 눈이나 붙이면서 함께 자자고 청했으나, 유소저는 저는 혼례만 올렸지 아직 서방님과 합궁을 이루지 못한 처자로 남녀유별이 엄연한데 어찌 같이 자겠습니까? 저의 죽은 육신의 원한을 풀어주고 제 몸의 상처가 아물어 다시 살아나게 될 때 비로소 서방님과 함께 살겠습니다.”하며 다시 새로 변하여 훌쩍 떠나 버렸습니다.

팔도감사는 당시 첫날밤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도망치다시피 돌아와 버린터라 그 이후의 사정에 대해서는 백지상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유소저가 어젯밤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날 밤 나타난 샛서방과 오붓한 살림을 차려 여지껏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것으로만 여길 정도였지요. 팔도감사는 유소 저의 변신한 모습을 보고서야 당시 신부가 죽었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유소저의 변신체가 떠난 후 유모를 통하여 유소저가 죽은 후 그 집안 일문(一門)이 모두 멸망해버린 과정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그 고왔던 자신의 신부 유소저는 양지바른 땅속에도 묻히지 못하고 아직도 그 흉물스런 방에 방치된 채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윽고 아침에 일어나 팔도감사는 그 유모할머니와 함께 자신이 처음 장가를 들었던 집을 향하여 길을 나섰는데, 유모를 대동한 것은 남녀는 유별인데 아무리 죽은 육신이지만 남자가 함부로 몸뚱이를 만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그 예전의 처갓집에 가서 신방을 들여다보니 유소저는 아직도 그 고운자태로 잠잔딕끼 (잠자듯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이람. 끔찍하게도 소저의 가슴에 날카로운 칼이 깊게도 꽂혀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본 유모는 불쌍하고도 안타까워 곧바로 달려들어 손잡이를 잡고 힘껏 빼내려 하였으나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남편인 팔도감사가 잡아 빼니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우선 칼을 빼내고 옷을 새로 갈아 입히고 하여 시신의 치욕을 해소시켰으나 어떻게 살려낼 방법이 없어 팔도감사와 유모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으며 이들은 일단 각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팔도감사가 집으로 돌아와 자기 방에서 잠을 청하는데 홀연 억새가 나타나서 유소저로 변하더니 서방님!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삼 년이 넘도록 가슴이 저려서 견딜 수 없었는데 이제야 서방님 나타나서 저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방에 누워만 있을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서 서방과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싶습니다.” 하였습니다. 팔도감사는 유소저가 살아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답답하기 그지없어 유소저에게 그렇다면 당신이 살아날 수 있는 특별한 비방(秘方)이라도 있단 말이오! 있다면 말씀을 해보시오? " 하니 소저는 있고말고요. 제가 가르쳐드리는 대로만 하시면 저는 분명코 살아 날 수 있습니다. 다만, 서방님의 정성이 얼마나 진실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저는 자기를 살리려면 우리나라 절이라는 절은 다 뒤지다보면 어떤 절간 법당 뒤편에 오색구슬이 있을 것이요. 그 구슬을 구해다가 저의 온몸을 문지르면 상처가 낫고 새살이 돋아나며 종국(終局)에 가서는 생기가 돌아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팔도감사는 오색구슬을 찾아서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절이라는 절은 다 뒤지고 다녔으나 도무지 구슬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날 며칠을 뒤져도 별무성과가 되자 팔도감사는 낙심천만하여 우리나라에 절이 한 두 개냐며 한강 백사장에서 바늘찾기라고 한때는 포기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한이 맺힌 삶이었어! 살아있는 내가 이 정도의 어려움마저도 못 참고 포기한다는 것은 지하의 부인에게 취할 도리가 절대 아니다. 내가 힘을 내서 결국에는 못찾는 한이 있더라도 찾는데까지는 찾아보겠다며 다시 절을 향하여 나섰습니다.

이 절 저 절 돌아다니기를 석 달 열흘 꼭 100일째 되는 날 지리산자락의 조그마한 암자를 찾아가서 법당 뒷편을 쳐다보니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구슬이 땅위에 올려져 있지 않것소? 그야말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하는 말상을 뜬 며느리에게 3종류의 벼슬을 내려주었는데 말하자면 귀신(혼백)이 벼슬을 수여받는 것이었습니다.

팔도감사는 다시 죽은 신부가 있는 신방으로 찾아와 구슬을 죽은 신부의 이마 위에 얹고 하루저녁을 같이 자니 신부의 몸이 따뜻해지며 어렴풋이 맥박이 뛰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슬을 상처부위에 올려놓으니 금새 새살이 돋아오르고 구슬로 전신을 문질러대니 신부는 '! 잠 한번 곱게 잘 잤다하며 눈을 부스스 벼대며 살아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팔도감사는 순식간의 기적적인 일에 놀라워하면서도 너무 반가워 뜨거운 포옹을 하며 감격적인 재회의 기쁨을 맛보앗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혼인생활을 맞이한 두 사람은 백년해로하며 많은 해보. 누리며 잘 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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