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과부개가 허락의 이유

지나간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잘못된 일 가운데서도 가장 잘못된 것이라면 청상과부라 하여 젊어서 홀로된 부인들을 절대 개가하지 못하도록 붙들어 옭아맨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육신을 가진 여인네들이 평생 아무런 낙이 없이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정말로 심한 경우는 혼인하기로 약속하여 사주단자만 보내와도 여자는 남자 측의 식구로 간주되어 혼인을 치르기 전에 남자가 급서(急逝)해도 여자는 시댁으로 가서 평생 수절하며 살다가 그 집의 귀신이 되어야 했으니, 육신으로는 숫처녀인데 기혼자 취급을 받으며 한을 안고 산 것이었습니다. 과부의 개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부자양반 댁에 시부모와 며느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양반 댁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더니 성장하여서도 맨날 잔병치레가 끊일 날이 없었고 어렵사리 장가는 들여놓았는데 장가 간지 일 년도 못되어서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법도가 며느리의 개가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위하여 후원에다 별채를 하나지어 기거하도록 하고 수시로 보살펴주었지요.

그 때는 보쌈이 있어 혹여 싸가지나 않을까 또 동네의 젊은 남자들이 넘보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어 시아버지는 하루저녁이면 너 댓 차례의 순행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별채로 보낸 지 몇 년이 지난 어느 해 봄날 시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이 후원으로 가서 며느리가 별일 없는지 둘러보며 갔는데, 며느리방에서 도랑도랑하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보니 왠 남자와 며느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였습니다.

며느리- “ 여보. 뒤뜰에 복사꽃이 너무 화사하게 피었어요. ”

신 랑- “ . 그래. 벌써 사월이 되었는가보군. ”

며느리- “ 우리 손잡고 꽃나무사이를 걸으면서 꽃향기에 취해봐요. ”

신 랑- “ 아 당신의 향기와 꽃의 향기 벌써 취하는데

며느리- “ 이럴 때 운치있는 시 한수 읊으면 그만 이것어요. ”

신 랑- “ 이화--하고 은한------삼경인제---

--------------------------------------- ”

며느리- “ . 당신 언제 그렇게 좋은 시를 배웠어요. ”

신 랑- “ 이 봄날 어울릴 것같아 한번 읊어보았소. ”

며느리- “ 우리의 젊음도 늙지 않고 항상 봄날이었으면 좋것어요. ”

신 랑- “ 아무렴. 우리 늙지말고 천년만년 살아봅시다. ”

며느리- “ ------------------------------- ”

신 랑- “ ------------------------------- ”

[두 사람의 대화는 그칠 사이 없이 계속 이어지는데 때로는 웃음꽃이 피다가 때로는 진지하게 바뀌다가 하면서 엿들어도 흥미있는 내용이었다.]

 

시아버지는 잔뜩 긴장하여 머릿속에서는 정숙하던 며느리가 도무지 그럴 리가 없닥 부인하면서도 살금살금 헛간으로 걸어가 길다란 작대기를 들고 며느리방 앞에서서는 아가야! 너 지금 누구랑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고 물으니 며느리는 ! 아버님. 아무도 없사와요. 잠은 안 오고 하도 무료해서 혼잣말을 해 본 거예요하는 거였습니다.

과연 방의 문을 열어놓고 보니 세상에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올 골베개를 신랑처럼 옆에다 놔두고 혼자서 12역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이런 광경이 너무 가엾고 측은하게 생각되어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며느리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며느리를 위로하였습니다.

아가야!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니 신랑을 잃고 얼마나 외로웠느냐. 그런 속사정이 있었으면 진즉 후련하게 원정이라도 해 볼 것이제. 혼자서 네 속만 다 곯았구나.”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달래고 나온 후로 몇날 며칠을 고민고민 하다가 홀로된 젊은 며느리를 집안에 묵혀두어 썩히면 과연 얼마나 득이 될까 싶어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안방으로 불러 얘야! 나도 여러 날을 생각했다. 내가 억지로 너를 붙잡아 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법도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번 날 밤의 광경을 보고 나도 많이 깨달았다. 나라의 법을 어긴 것이 죄가 된다면 그 대가는 내가 받을 터이니, 너는 개의치 말고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어 새 출발을 하도록 하여라. 지금까지 우리 집을 지켜준 것만 해도 너무너무 고마웠다.”며 굴레 같은 시집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개가하여 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개가가 허락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며느리의 골베개대화 사건이 생겨난 이후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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