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삼천갑자 동방삭이를 붙잡은 이야기

아주 오랜 옛날에 삼첨갑자 동방생이(동방삭이)라고 허는 특출한 사람이 있었는갑디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한 나라 맹키로(처럼) 되어 있어 별도의 경계없이 오기도 허고 가기도 했었다요. 자유스런 왕래가 가능했다 이 말이제.

아- 동방생이라고 허면 삼천갑니까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아니것소. 어떻게 혀서 죽지 않았는고 허니,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선녀인 서왕모(西王母)라는 사람이 있지 않아요. 그 서왕모가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선도(仙桃= 천도(天桃))복숭아를 가지고 있었는데, 궁궐에서 꽤 높은 벼슬자리를 가지고 있던 동방생이가 궁궐에 재주로(자주로) 드나드는 서왕모가 가지고 다니던 그 복숭아 한 개를 몰래 훔쳐먹어서 그렇게 되었다요. 복숭아를 먹고 나더니 무슨 양약(霷藥)을 먹은 것처럼 더욱 젊어지고 기운이 넘쳐나면서 나이를 백 살, 이백 살 쭉쭉 먹어가도 전혀 늙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주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시기심이 나고 부아(화)가 치밀어 오를 것 아니요. 다같이 하늘로부터 명줄을 타고 났는디, 누구든 백 살도 못살고 누구는 수 백년, 수 천년을 너끈히 살게 해주는 것에 성질이 안 날 사람 있것소. 나부터서라도 화가 날만 허제.

그래서 중국이건 우리 나라건 온 나라의 고을고을에서 어떻게 하면 이 얄미운 동방생이를 단번에 잡아다가 코가 납작하게 혀갖고(해가지고) 죽여 버릴까 하는 모의가 있었답니다. 사람들만 모이면 "저 놈의 동방생이 어떡허면 잡아불까, 내 손으로 잡아 쥑이면(죽이면) 세상에 그런 원이 없겄네" 하나같이 동방생이 타령이었어요.

그러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몸집이 커졌다 작아졌다 여우로 변했다 원숭이로 변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동방생이를 잡아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제. 눈앞에서 뻔히 목격하면서도 "어허- 저놈 저기 간다. 저 놈을 잡아야 헐턴디" 소리만 지르며 발만 동동 구를 따름이었응께. 동방생이는 온갖 재주가 비상한데다 선견지명(先見之明)까지 있어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어.

모든 고을 사람들이 이젠 이 과업을 포기하고 "저놈은 저렇게 비상한 재주를 가졌으니께 오래토록 살만허제. 다 자기 능력껏 복록을 누리는 것 아니여" 하면서 당연시하는 쪽으로 돌아섰지. 그러나 오직 장성고을의 황룡사람들만은 제놈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해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이' 뭔가 계략을 잘 세우면 못 잡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거야.

그들은 몇날 며칠을 머리를 짜내고 다양한 계책을 숙의하였고 드디어 이들 가운데 평소에도 남 못하는 생각을 잘 끄집어내는 칠수라는 사람이 좋은 방안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그 방안은 여러 사람이 개울가에 앉아 흐르는 물에다 숯을 씻고 있으면 동방생이가 지나가다 생전 처음보는 장면이라 하도 신기하여 도대체 당신들 무엇을 하고 있소 하면서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숯이 하얗게 될 때까지 씻는 것이라고 차분히 설명해 주면서 말미에 느닷없이 동방생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음이 풀어져 어떤 내막이 있는줄도 모르고 얼떨결에 비밀이 쉽게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야.

동네사람들은 과연 그럴 만 하다며, 숯이야 흔해 빠진 것이고 무슨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밑져야 본전이니 그렇게 한번 해보자고 하였습니다. 날씨가 쾌청한 날을 택하여 동네사람 십여 명이 개울가에 나와 소쿠리에 숯을 담아 열심히 씻고 있는 것을 멀리서 지나가던 동방생이가 보고는 "저기 저쪽에 뭐 희한하게도 무슨 시커먼 물건을 여러 사람이 나와서 씻고 있네. 저게 뭘까. 쬐끔 궁금헌데 한번 가볼까?" 하고는 개울가로 다가간 거야.

개울에 도착한 동방생이는 "고생들 허시오. 그런데 당신네들 지금 무슨 일을 헙니까" 하고 물으니께, 마을사람들은 동방생이를 멀리서는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고 더욱이 너무도 쉽게 동방생이가 나타난 것에 적잖이 놀라워 하였지.

그러나 이들은 속으로는 떨리며 긴장이 되었지만, 한사코 침찬하며 의연히 대처하기 위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보면 모르겠소. 지금 숯을 씻고 있소. 숯이 희어질 때까지 씻는 중이오." 하는 겁니다.

동방생이는 "괴이한 일입니다. 내 천년을 넘게 살았어요 숯이 하얗게 된다고 숯을 씻는 것을 보기는 정말 난생 처음입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동방생이님은 그렇게 오래 사시면서 이곳저곳 넓은 세상을 다 돌아다니니까 너무너무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희한한 구경거리도 많이 보시구요" 하며 비행기를 태웠제.(추어주었제)

동방생이는 "그렇기는 하지요. 참 좋은 구경도 많이 하고 안 좋은 것도 많이 보았소. 세상일은 언제난 영예와 치욕이 반복되는 것이 정한 이치인 듯 싶습니다" 하며 인생담으로까지 이야기가 전개되었어.

슬슬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마을 사람들은 지금이 비밀사항을 알아낼 적기로 판단하고는 "그래도 동방생이님은 몇 천 년을 죽으시지도 않고 살아오신 것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아무리 볼 것 못 볼 것 보면서 어려운 세상을 살아간다고 새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희들이 가장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요. 전지전능한 천하의 동방생이님께서도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쯤은 잇을 것 같아요. 말씀 좀 해주세요. 예- 예-"하며 은근슬적 조르며 매달렸어.

동방생이는 "내 생각도 내가 오래 사는 것이 자랑스럽기는 해요. 단 백년도 못사는 여느 사람들을 보면 짠하다는(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무서워 하는 것을 알고싶다고요. 저도 인간인데 무서운 것이 없겠어요. 이거 비밀인데 그냥 말해도 되나. 이 말을 하면은 누가 나를 잡아가는 것 아닐까. 에- 또- 설라므네 내가 무서워하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음- 나는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가시덤불 있지요 그 가시덤불이 제일 무서워요. 가시만 있으면 무서워서 옴쭉달삭을 못합니다"며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뒤집힐 만한 천기(天機)를 누설해버렸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숯을 씻는 사람들이 일어서서 일제히 동방생이를 붙잡으려고 달려들었어요. 동시에 저만치 떨어진 마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왔는데, 동방생이를 잡기 위해 상황이 벌어지면 합세하도록 이미 약조가 되어있었지. 천기를 누설한 동방생이는 마을사람들이 자신을 때려잡기 위한 계략에 자기가 말려든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삼식육계를 놓기 시작하는 거야. 한편으로는 다수의 건장한 마을 청년들을 산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도록 배치해 놓았는데, 동방생이는 그것도 모르고 산길로 도망을 치다가는 갑자기 길을 막는 청년들을 보고 길옆 수풀더미 쪽으로 비껴 지나갔제.

뒤에서는 산 무리의 마을사람들이 "저 놈 동방생이 잡아라. 거기 서지 못하겠느냐" 소리를 치며 추격해 왓어. 황급해진 동방생이는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메다 마을사람들이 바짝 접근해 오자, 칡넝쿨과 땅까시넝쿨(야생 찔레꽃)이 엉킨 덤불 속을 지나가려다 까시넝쿨에 온몸이 얽혀 결국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방생이는 칡넝쿨로 꽁꽁 묶인 채 마을로 끌려내려 와 갖은 고초를 당하고 끝내는 굻어서 죽고 말았어요. 마을사람들은 그를 곱게 묻어주고 이후로는 사람이 노래 사는 것을 그리 불겁이지(부럽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삼천갑자를 산다는 동방생이도 말 한마디 잘못 내뱉어 황천길을 재촉한 것 아니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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