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

구렁이와 신랑신부의 대결

옛날에 광산군 어떤 고을에 가난한 젊은 내외간(부부)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 알다시피 옛날에는 에지간한(어지간한) 사람들은 뭐가 찢어지게 가난하여 잘해야 일년에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몇 차례 먹는 것이 고작이고 더욱이 쇠고기는 한 번이나 먹기 아니면 아예 한 번도 못 먹고 넘어가기 일쑤였제.

이 집의 마느래가 인자 애기가 서니까,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었든 모양이에요. 고기가 그렇게 먹고싶은 상태에서 밭일을 하려고 호미를 들고 밭에를 갔든 갑디다. 밭어귀에 도착하니 어린애 다리통만치나 굵은 구렁이란 놈이 꿩의 몸뚱이를 또아리처럼 둘둘 감아서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는 거여요. 이것을 보고는 그 부인은 자신이 임신중이라 살생하는 것은 절대금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서 우선 당장 고기 한 점이나 먹어 볼 요량으로 큰돌덩이를 집어들어 그 구렁이를 때려서 쫓아버리고 그 꿩을 뺏어다 삶아 먹었습니다. 고기를 먹고 아무런 탈 없이 열 달이 지나 건강한 아들을 낳았답니다.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드디어 나이가 스물이 되니 장가를 갈 나이가 되어 인근마을로 가마를 타고 장가를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행로의 절반쯤 지나가니 대로 가운데에 큼지막한 구렁이 한 마리가 쭉 뻗대고 있으면서 서(혀)를 널름널름 험시로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이었어.

신랑이 가마에서 내려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구렁이는 "으흠! 너를 잡아먹어야겠다"는 것이었어. 신랑은 지금 장가를 가는 길이니 혼례는 치러야 할 것이 아니것냐며 꼭 잡아먹어야 한다면 '내일 아맘때 다시 이 길로 갈 테니 잡아먹어도 그때 잡아먹으시오' 하며 혼례를 핑계로 일단 위기를 모면하였어. 그러자 구렁이는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고 신부집에 무사히 도착하여 예를 지낼 수 있었지. 그렇지만 즐거운 혼례를 치렀어도 신랑은 낯빛이 어두워지며 안절부적을 못하는 것이야.

신랑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잠을 못 자고 끙끙대고 있자 신부가 걱정이 되어 물으니 신랑은 "나는 내일이면 죽소, 오늘 장가오는 길에 만난 큰 구렁이가 내일 다시 그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잡아먹겠다는 것 아니것소. 그러니 기가막혀 잠인들 오겠소" 하는 거야.

신부는 "서방님이 그런 고민이 있으셨어요.저는그것도 모르고---. 하지만 서방님 너무 걱정마셔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쟎아요. 만에 하나 죽을 위험에 처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하면 분명 살아나실 방도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고 위로했어. 신부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신랑은 겨우 눈을 붙이게 되었고, 두 사람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앞두고 새벽 일찍 일어났지. 신랑은 이부자리를 개키는 등의 방안정리를 하고 신부는 이제 마지막으로 친정부모들께 아침진지를 해 올리기 위해 부엌으로 나가 밥을 하여 친정부모와 신랑신부가 모여서 아침밥을 먹었어.

두 사람은 친정부모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위험을 전혀 입밖에 꺼내지 않고 비장한 각오로 신행(新行)길에 올랐어요. 신랑신부가 각각 나란히 가마를 타고 오는데 어제 신랑이 구렁이를 만났던 자리에 대처나(역시나) 큰 구렁이가 버티고 서있는 것이라. 이를 본 각시는 두 개의 가마를 땅에 내리게 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구렁이에게로 다가가 " 이 고약한 구렁아! 왜 무고한 우리 신랑을 꼭 잡아가려 하느냐? 차라리 나를 잡아가거라. 만일 우리 신랑을 잡아가려면 나 혼자서 생전(평생)살아갈 수 있는 보화(寶貨)덩이를 주라" 며 소리 소리를 질렀어. 구렁이는 자기 원수가 된 여인의 아들이어서 잡아먹으려 했지만 막사 ㅇ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처자식이 딸린 사람을 무참히 해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여. 그래서 구렁이는 큰 맘을 먹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화덩이 물건을 그 신부에게 주리고 작정하였어.

그 물건이 뭐였냐면 도깨비 방망이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요새 애들이 하는 게 임기의 조종판 비슷한 것이었는 모냥(모양)인데, 긴 네모판 위에 꼭지가 네 개 달려있는 형태였다 이 말이요. 구렁이는 신부에게 보화덩이 물건을 이것은 밥이 나오도록 하는 꼭지, 가운데 꼭지는 옷, 저쪽에 것은 돈이 나오는 꼭지라고 설명해 주었어. 그리고 위쪽에 있는 꼭지는 참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며 한참 망설이며 뜸을 들이다가 이것은 말이오 미운 사람이 있을 때 ' 너 죽어라' 하고 누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죽게 되는 것이오 하고 일러주는 거야. 구렁이는 설명을 하고 신부에게 보화덩이를 넘겨주면서 '이제는 네 신랑을 잡아먹어야겠구나' 입맛을 다시며 신랑에게 다가서는 것이었어요. 구렁이의 입이 신랑의 옷깃에 닿는 순간 그 신부는 보화덩이가 우그러들 정도로 힘껏 미운 사람 죽이는 꼭지를 눌러 구렁이를 죽게 하고 말았다 이것이여요.

이렇게 하여 이들 부부는 그야말로 어렵디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거기에다가 보화덩어리까지 얻어 가지고 가서 남줄겁이지(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이것만 믿고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는 돈문제로 서로 다투기까지 하였어요. 부부가 보화덩이를 소중이 간직하지 않던 어느 날 이 집에서 키우는 개가 뭣인 줄도 모르고 그것을 입에다 물고 돌아다니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려버렸답니다. 보화덩이를 믿고 게으름만 피운데다 그동안 돈 아까운 줄도 모르고 펑펑 써대다가 몇조금(얼마) 못 가서 이들의 살림은 거덜이 났고 서로 후회를 하며 앞으로는 착실하고 노력을 하며 살기로 서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이년이 지난 후 집 앞앞 강가에서 낚시꾼이 고기를 잡아 올린 것을 마침 그곳을 지나던 이 집의 개가 잽싸게 나꿔채어서 집으로 물고 들어오더랍니다. 한때는 부자로 살았었지만 가난한 기운이 찍찍 흐르게 살던 이들 부부는 개가 물어온 물고기를 잡아서 끓여먹으려고 배를 갈라보니, 놀랍게도 뱃속에 그 보화덩이가 들어있지 않겄어요?

부부는 다시 부자가 될 수 있었으나 그전처럼 게으름도 치우지 않고 이웃의 못사는 사람들도 도와가며 오래도록 잘 살았답니다. 아마 중간에 보화덩어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도 사람이 그것의 힘만 믿고 나태해지고 자기들의 한없는 욕심만 챙길라고 허니께 일어난 조화가 아닌가 생각돼. 뜻밖의 행운도 그것을 옳게 이용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써야 오래 유지되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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