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기우제 및 깃대제

- 각화마을 기우제


각화동의 각화마을에서는 예전에 기우제를 모셨다. 1959년(기해년) 음력 7월에 가뭄이 혹심하여 문화동 인근의 농민들이 두암동 군왕봉(무제등)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로 합의하고, 기우제 비용으로 각 호당 50원씩 걷었다. 기해년 가뭄의 원인은 군왕봉 정상에 누군가 묘를 썼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에 농민들과 여자들이 앞장서서 군왕봉 정상을 파헤치고 오물을 사방에 뿌리고 산을 내려오자 곧바로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기우제의 순서는 유교식으로 거행되었는데, 정결한 한복에 갓을 쓴 제관들이 동서남북 방향에 비를 내려 주십사고 배려한 뒤에 기우제문을 읽고 나서 헌식으로 생돼지머리를 땅에 묻고 산꼭대기에 불을 피웠다고 한다.



- 재매마을 깃대제


신안동 재매마을에서는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룻날 깃대제를 모셨다. 마을의 동, 서, 남 세 곳에다 꼭대기에 기러기 모양의 나무 조각을 단 짐대를 세워 두고 그 밑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 음식은 3곳의 정결한 집을 정해 금줄을 치고 부정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화로 인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금곡마을 기우제


금곡마을에서도 과거 기우제를 모셨다. 마을 회의를 통해 기우제 모실 제일이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몸과 마을을 정갈히 하고 금기를 지킨다. 그리고 몇 사람의 제관을 선정하여 제사 준비를 들어간다. 제비는 호구전으로 걷었으며, 제물로는 몇 가지 음식과 돼지머리, 산닭을 준비한다. 그리하여 저녁 무렵에 제물을 가지고 마을 뒤 금산 중턱에 올라가 너른바위에 제물을 차려놓으며, 그 옆으로 불을 지필 나뭇단을 차곡차곡 쌋아놓는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하며, 제가 끝나면 산닭의 목을 잘라 바위 주변으로 뿌린다. 한편 비가 오지 않으면 마을 아낙네들을 키를 가지고 마을 앞 개울가에 나가, 곡식을 까불 듯이 물을 떠서 까불면서 '비가 온다, 비가 온다'고 외쳐 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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