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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사라진 민속놀이 - 충효마을 당산제, 평촌마을 당산제, 화암마을 당산제
    - 충효마을 당산제충효마을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 당산은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 2곳인데, 할아버지당산은 원래 마을 입구 모정곁에 있는 수령 5백년 정도의 귀목나무였으나 오래전에 벼락을 맞은 후 새로 가지를 친 것이라 한다. 할머니당산은 광주댐 상류의 서쪽 논가에 무덤처럼 흙을 돋우어 세운 입석과 그 주위의 팽나무 세 그루이다. 정월 초순경에 마을 회의를 통해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 가운데 연장자를 우선으로 제관 3, 축관 1, 화주 1, 집사 4명을 뽑는다. 이 가운데 화주는 궂은 데를 피하고 찬물로 목욕하는 등 금기를 철저히 지킨다. 제비는 마을 전답으로 충당한다. 제일 당일에는 마을 입구, 당산, 제관, 축관, 화주댁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아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제의 시간이 되면 풍물을 치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돈 뒤에 할머니당산으로 나아가서 제를 모신다. 제는 진설-초한-메 올리기-아헌-독축-종헌-헌작-소지-음복-헌식 순서로 거행된다. 당산제 모신 다음 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마당밟기를 하며, 동네잔치를 벌인다.- 평촌마을 당산제평촌마을에서는 해방 무렵까지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당산제를 모셨다. 당산은 모두 12당산이었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당산 2군데에서만 뫼다가 그나마 오늘날에는 모시지 않게 되었다. 제물은 닭, 떡, 삼실과, 술 등을 준비한다. 닭은 작은 것으로 12마리를 준비하고 떡은 작은 시루를 사용한다. 제가 끝난 뒤에 음복을 하는데, 특히 떡은 '액맥이떡'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 고루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화암마을 당산제화암마을 당산제는 '12당산제'라 하여, 마을을 중심으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제를 모셨다. 그리고 풍물패가 12당산을 돌아다니며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으며, 날이 새도록 흥겨운 잔치를 벌여 친목과 화목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6․25사변 당시 희생된 주민과 전사자들의 이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산나무 12그루 중 11그루를 베어 판 뒤로는 당산제가 없어졌다. 마지막 남은 한 그루는 수령이 4백년 된 소나무로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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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우제 및 깃대제
    - 각화마을 기우제각화동의 각화마을에서는 예전에 기우제를 모셨다. 1959년(기해년) 음력 7월에 가뭄이 혹심하여 문화동 인근의 농민들이 두암동 군왕봉(무제등)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로 합의하고, 기우제 비용으로 각 호당 50원씩 걷었다. 기해년 가뭄의 원인은 군왕봉 정상에 누군가 묘를 썼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에 농민들과 여자들이 앞장서서 군왕봉 정상을 파헤치고 오물을 사방에 뿌리고 산을 내려오자 곧바로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기우제의 순서는 유교식으로 거행되었는데, 정결한 한복에 갓을 쓴 제관들이 동서남북 방향에 비를 내려 주십사고 배려한 뒤에 기우제문을 읽고 나서 헌식으로 생돼지머리를 땅에 묻고 산꼭대기에 불을 피웠다고 한다.- 재매마을 깃대제신안동 재매마을에서는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룻날 깃대제를 모셨다. 마을의 동, 서, 남 세 곳에다 꼭대기에 기러기 모양의 나무 조각을 단 짐대를 세워 두고 그 밑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 음식은 3곳의 정결한 집을 정해 금줄을 치고 부정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화로 인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금곡마을 기우제금곡마을에서도 과거 기우제를 모셨다. 마을 회의를 통해 기우제 모실 제일이 정해지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몸과 마을을 정갈히 하고 금기를 지킨다. 그리고 몇 사람의 제관을 선정하여 제사 준비를 들어간다. 제비는 호구전으로 걷었으며, 제물로는 몇 가지 음식과 돼지머리, 산닭을 준비한다. 그리하여 저녁 무렵에 제물을 가지고 마을 뒤 금산 중턱에 올라가 너른바위에 제물을 차려놓으며, 그 옆으로 불을 지필 나뭇단을 차곡차곡 쌋아놓는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하며, 제가 끝나면 산닭의 목을 잘라 바위 주변으로 뿌린다. 한편 비가 오지 않으면 마을 아낙네들을 키를 가지고 마을 앞 개울가에 나가, 곡식을 까불 듯이 물을 떠서 까불면서 '비가 온다, 비가 온다'고 외쳐 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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