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무드리의 역사 | 백제시대

전남지방이 백제에 속한 시기는 백제가 마한을 정복하였다고 하는 근초고왕 24년인 369년부터 볼 수 있지만, 이 시기는 영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대형 독무덤을 축조한 토착세력인 마한집단이 잔존하고 있어 백제가 완전히 정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고을에서 백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은 나타나지 않으나, 「삼국사기」기록에 동성왕이 직접 무진주까지 내려온 기사가 있다. 이때 탐라국이 백제에 항복했던 기사로 보면 이 지역이 백제 동성왕 때 완전히 예속되었음을 의미하며, 무등산을 중심으로 한 이곳이 군사적․경제적인 요충지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제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백제 때 무등산에 성을 쌓고 백성들이 즐거워서 “무등산곡”이라는 속악을 불렀다고 전하나 그 가사는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려사』나 『세종실록지리지』에 현의 북쪽 5리에 토성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의 행정구역과 관련된 토성지가 운림동 일원에 남아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해양현은 본래 백제의 무진주인데, 신라가 백제를 취하여 도독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도독은 통일신라 때 설치한 것이나 백제와 관련된 곳에 파견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백제시대의 토성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토성 이외에도 백제시대 때 우리 고을 우두머리의 무덤으로 보이는 돌방무덤이 있는데, 이러한 돌방무덤은 각화동과 운림동에서 발견되었으며 운림동에서는 집단 돌방무덤이 조성되었다.
현재 파괴되어 없어졌지만 각화동 돌방무덤에서는 유리제 소옥 8점과 관못 다수, 철촉 1점, 여러 종류의 토기 등이 발견되었고, 운림동 돌방무덤에서는 철편수점과 토기편 등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보면 백제시대에 우리 고을에도 지배계층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시대의 우리 고을은 무등산에 토성을 쌓고 그 안에서 지배층이 거주하였으며, 백제 멸망 후에도 부흥운동이 실패하여 신라의 영향 하에 들어가면서 통일신라시대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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