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각화동

● 동명의 유래 

각화동(角化洞) 본래 광주군 두방면의 지역으로서, 삼각산 밑이 되므로 각화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치면의 문산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각화리라 해서 서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치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문화동회의 관할이 되었다가 각화동이 되었다. 위에서 각화동(角化洞) 삼각산 밑이 되므로 각화라 하였다.
그러나 각화동(角化洞)의 각화(角化)는 삼각산(三角山) 아래라는 의미에서 줄어진 각하(角下)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각하(角下)라는 말보다는 ‘각화(角化)’라는 말로 바꾸어 불린 지명이라 생각된다.

▶ 각화마을의 유래

백제 말기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군왕봉과 태봉이 소뿔의 형상을 하고 있어 각화라 불려졌으며 서방이나 풍향동이 역촌인 반면 각화마을은 고을터였다고 한다. 옛부터 명당이 있어 진사가 백 명이 나올 자리였으나 白(백)씨가 진사가 되어서 그 한 사람으로 끝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 마을의 연혁

- 구 한 말 오치면, 송정, 문산리, 서양면 신흥리, 두방면 각화리가 있었음.

- 1935. 10. 1 광주군 서방면 문흥 각화리가 됨.

- 1955. 7. 1 광주시 풍향출장소 관할 문흥, 각화리가 됨

- 1957. 12. 2 본청직할의 문화동이 됨.

- 1961. 3. 10 북부 출장소 관할이 됨.

- 1973. 7. 1 구제 실시에 따라 문화동은 동구 관할이 됨.

- 1980. 4. 1 동구관할의 문화동은 신설된 북구관할이 됨.

- 1985. 11. 1 문화동에서 두암동이 분동됨.

- 1995. 3. 1 문화동에서 문흥지구와 우산주공 APT 지역 일부가 문흥동으로 분동됨.


▶ 마을의 옛 지명

- 각화(마을) : 각화동

- 각홧들(들) : 각화서쪽에 있는 들.=조횟들

- 강력골(골) : 각화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저수지 위 남쪽.

- 군버들(들) : 각화 북쪽에 있는 들. 지금은 화물터미널이 있다.

- 꼬시랑굴(골) : 각화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저수지 위 북쪽.

- 낡은솥골(골) : 꼬시랑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뒷동산[세자봉](산) : 각화 뒤에 있는 동산

- 들싸드릿재(고개) : 들싼재. 청오동과 경계

- 들싸릿재(고개) : 각화 동남쪽에서 청풍동으로 가는 고개

- 들싼드릿재(고개) : 들싼재

- 마갈재(고개) : 각화 동북쪽에서 망월동으로 가는 고개. = 모갈재

- 무숫골(골) : 마갈재 북쭉에 있는 골짜기

- 바래봉(산) : 북당골 남쪽에 있는 산

- 북당골(골) : 낡은 솥골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

- 세자봉(산) : 뒷동산

- 소까끔(산등) : 강력골 동쪽에 있는 등성이

- 수웃등(등) : 숭엇등

- 숭엇등[수웃등](등) : 소까끔 동쪽에 있는 등성이

- 장수논(논) : 정가베미 아래쪽에 있는 긴 배미의 논. 지금은 금호타운

- 정가배미(논) : 각화 서쪽에 있는 논. 정씨가 개간했다 함. 지금은 금호타운

- 조횟들(들) : 각화동과 문흥동에 걸쳐 있는 들

- 쥐말(골) : 두암동의 '쥐말' -두암동의 경계

- 참판골(골) : 각화 남쪽에 있는 골짜기. 두암동. 현재 정수장.

- 초깔모팅이(모롱이) : 소까끔 위쪽에 있는 모퉁이. 저수지 위 남쪽

- 큰골(골) : 꼬시랑굴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마을 뒤




- 무드리 향토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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