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북구 신룡동 : 신거무 장의 유래

거가 지원고을이여. 담양 신평마을에 살던 홍주 송씨가 진월고을 원님으로 왔는데, 민치도 잘하고 지방통치를 잘할라면은 신거무를 조심해라.
주변에서들 그랬는데, 신거무를 조심하란 것이 신거무를 없애부란 말로 알았어. 제일 위험한 인물인께 그래서 뚜드려서 없애부렀단 말이여. 그런디 신거무 죽은 뒤로 며칠 안가서 신거무 죽은 귀신한테 새 원님이 죽게되았어. 뭐 흰거미, 독거미가 나와서 원님 부랄을 물어서 죽었다고 글던가, 어쨌든 죽은 원님의 생이를 뜸고 간데, 생이가 못가요. 신거무 죽은 귀신이 생이 앞에서 가로막고 춤을 추고 있은께. 그래서 그 송원님 아버지가 송미암 선생인디, 나와가지고 보니까 아들 생이가 못가고 잡귀가 앞에서 춤을 추면서 못가게 하거든, 다른 사람 눈에는 안보인디, 미암선생 눈에만 뵈여. 그래서 생이를 내리라고 했어. 그래놓고 네가 누구냐 그런께 신거무라고 하거든. 그래서 왜 그러냐 물으니, 나를 무고하니 이렇게 죽엿다. 그러니 내 원한을 풀어줘야 하겠다. 그러거든. 그래서 관을 꺼내어 가지고 자기 아버지가 회초리로 때렸단 말이여. “네 이놈! 민치를 잘하고 행정을 잘하라고 그랬제. 신거무를 죽이라고 그러디 이놈아!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관을 내려다가 두들겼다는 것이다. 그런께 신거무가 “반분이나 풀립니다. 분이 좀 풀립니다” 그러더란 것이여. 그것이 사실인가 어쩐가 몰라도 그래서 “그러면 네 소원이 무엇이냐?” 그러니 “여기다 장터나 하나 만들어 주쇼. 그러면 애가 거그서 귀신이나 얻어먹고 살아야겄습니다” 그래서 송미암이 장을 하나 세워줬다는 것이여. 그것이 신거무장이여. 그런디 신거무장은 파짝 장이 돼야. 제일 늦게 가는 놈이 그 날 죽어 장을 세었어도 잘돼는디, 제일 늦게 가는 사람이 죽어. 근께 얼른 싸서 도망가야제. 석양 제일 늦게 간 사람이 죽은께. 그래서 나중에 장이 없어져불고 비야 장터로 옮겨갔다는 것이여. 사람이 죽어싼께, 그래서 신거무장이 유명하재. 이 신거무장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하고 결부시켜서 후백제 건국인 제2인자 견훤의 아들인 장수 신검의 이름이 송미암 선생의 아들은 죽인 흰거미하고 발음이 비슷한께 신거무를 이름이 붙여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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